|
대림 첫 주일 교회력으로 한 해의 처음이 기다림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오늘 성당에 들어오시면서 제대 앞이나 옆에 놓인 대림환을 보셨을 겁니다. 네 개의 초가 있고 그중 제일 진한 보라색 초에 촛불이 켜져 있지요. 새벽이나 평일 저녁에는 아침의 고요와 저녁의 평온함 속에 촛불 홀로 타고 있습니다. 그 빛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지금 성당의 주인은 신자도 건물도 아닌 저 촛불인 것 같습니다. 이 빛이 주는 고요와 평온함 속에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하시는 예수님,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오늘 제1독서는 유다 왕궁의 경비대 울안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내린 하느님 말씀을 전합니다. 유다 왕국의 멸망이 눈앞에 닥쳐온 시기, 나라는 이제 곧 망하고 예루살렘 성벽도 다 무너지고 예레미야를 가두었던 치드키야 임금은 두 눈이 뽑혀 청동 사슬에 묶여서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주겠다.”(예레 33,14) 오늘 독서 앞부분에는 “기쁜 소리와 즐거운 소리, 신랑 신부의 소리와 ‘만군의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예레 33,11)라는 신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구원의 모습을 말씀하시다니! 독서의 말씀들은 다윗 임금 때에도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서 현세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도 정말 이해가 갑니다.
유다 백성들은 한 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처지로 내몰리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을 포기하지도, 그들에게 절망하지도 않으시는 하느님. 더욱이 가져본 적도 없었던 꿈같은 행복까지 약속하시다니! 이런 불행을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그들인데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도 그런 점에서는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고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떨치며 올 것이다”(루카 21,27 참조) 하고 말씀하시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재난은 가깝게는 기원후 70년의 로마제국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 멀리는 마지막 종말의 때이기도 하겠지요.
예레미야서와 루카 복음의 정황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렸던 그 무엇을 생각하면서 오늘 제2독서를 묵상하면 이런 약속들이 실제로 이루어진 실체를 보는 듯합니다. 바오로 사도와 초대 교회 신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지요. 그런 확신과 흔들림 없는 신앙 속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그 날이 바로 오늘’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1테살 3,9)라고 감동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서간의 집필 연대가 기원후 50-55년경 쯤이니 그래도 거의 2000년 전이네요. 그때의 신앙과 굳은 확신이 마치 금강석처럼 빛이 납니다. 우리가 이런 확신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요.
사도 바오로를 통하여 성령께서 하시는 생명력이 넘치는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 제대 앞에 놓인 대림환의 초들을 봅니다. 이 초에 하나하나 불을 붙이면 제일 처음 것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갇혀있던 유다 왕궁의 경비대 안으로 또 다음 것은 루카복음의 예수님께로 그리고 세 번째는 아테네에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바오로의 책상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 같습니다. 남아 있은 초 하나는 바로 ‘지금 여기’에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2006년 12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이 마지막 촛불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어떤 믿음과 확신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레미야서처럼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습니까?
오늘 복음은 주님의 재림 못지않게 우리 개개인의 죽음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시간이 넉넉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 내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며 내일은 은총이요, 자비의 시간이고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망각할 정도로 찰나적인 세상사에 몰두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재림과 죽음의 시간은 무섭고 두려운 시간이 되겠지요.
조용히 타고 있는 대림환 촛불에서 극적인 기다림의 순간들이 일렁이며 지나갑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때가 차면(갈라 4,4 참조) 기다리던 분이 오시겠지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을 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또 우리가 이렇게 모자라고 부족하게 살고 있어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기다림을 주님께서는 작게 평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인생은 기다림 속에서 저물어간다고 누군가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다림은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 속에서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는 구체적이고 희망찬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쩌면 일년 중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때인지도 모를, 대림시기입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희생과 긴 인내를 요구한다는 점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구상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권고합니다. “삶은 인내로구나. 삶은 긴 인내로구나. 삶은 길고 긴 인내로구나!
● 이기락 타대오 신부·가톨릭교리신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