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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34 주간 금요일. 2006. 12. 1. 토평동.
묵시 20, 1-4.11-21, 2. 루카 21, 29-33.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합니다. 오늘의 복이 재앙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재앙이 복이 될 수 있으니, 日喜日憂하는 일이 쓸데없다는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살다보면 웃을 일도 있고 울 일도 있죠. 그때가 되면 울 일이 맞고 웃는 것이 맞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게 웃을 일도 울 일도 아니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웃고 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삶이 주님의 역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 33)
울고 웃던 일들, 세상에서 누구는 무엇인가 성취한 것 같고, 누구는 실패한 것 같으나 그것은 곧 사라지 이 세상의 일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삶에서 여기가 전부인 양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하고 주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아멘.
예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의 세상을 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집값 얘기이고, 부정부패의 정치 얘기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환경을 파괴해놓고서 웰빙을 이야기하고 다시 그것을 위해 환경을 파괴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표징이 되어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에서 우리는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루카 21, 28)라고 노래했습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세상의 힘을 가진 이들이 득실대며 자신의 목에 힘을 줄 때,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신앙에 확신을 가지며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 성당에서조차 가진 이들이 머리를 들고 없는 이들은 더럽고 치사해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에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사제가 세상의 이치대로 나오든, 교우들이 세상의 이치대로 나오든, 우리는 주님을 믿고 당당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대로 나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믿음대로 판가름하며 세상에 당당해야 합니다.(성당에서 우리는 자주 그리고 때로는 당당하게 평수를 이야기하고 집값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얼마나 위화감을 조성하는가.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그런 집조차 없는 이들이나 비교될만한 이들은 말도 못 꺼낸 채 그 자리를 슬그머니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내 아이가 일류 대학을 다니고 나왔다는 것이 자랑일 수는 있으나 그것 때문에 당당해지고 그렇지 못한 부모는 움츠려들 수 있다면 성당도 결국은 세상의 이치에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제 TV 프로그램을 보니까 개들의 서열다툼에 대한 것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치열하죠. 그러나 주인이 오면 이내 꼬리를 내리고 살랑거리며 주인에게 다가옵니다. 진정 힘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주인 앞에 다가가 주인과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것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힘을 가진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세상에서도 물론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특히나 이 성전에 와서 그리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 우리는 집값을 이야기하기보다 주님을 더 이야기해야 합니다. 개들도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의 힘에 복종하며 더 가까워지려고 하거늘, 나는 주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그리고 가까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2. 오후 1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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