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했던 헝가리의 황녀-이기양 신부님

2006. 12. 1. 오후 10:18:17

글자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했던 헝가리의 황녀


  
   오늘은 자선사업의 수호성인이고 프란치스코 제3회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의 성녀는 여러 명인데 그 중에서도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헝가리인 왕비 엘리사벳이 가장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1207년 헝가리의 왕 안드레아 2세의 공주로 태어난 엘리사벳은  불과 4살 때 정치적 이유로 중부 독일 튀링겐의 영주 아들 루트비히와 약혼했으며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7살 위인 그와 함께 어린 시절을 살게 됩니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12~3세기 경 문무의 장으로 유명 가끔 호사스러운 연회가 베풀어졌으므로 신앙생활에 지장을 많이 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엘리사벳은 그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당 근처를 택하여 놀이를 했고 놀 때에 내기에 지는 사람은 성당에 가서 주님의 기도 12번을 외우도록 하는 벌칙을 즐겨 하는 등 신앙생활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엘리사벳은 매 주일마다 양어머니인 성주의 부인 소피아의 인솔로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신분상 그녀의 머리에는 화려한 황금관이 씌워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못 박히신 예수님의 성상 앞에서 기도하던 엘리사벳은 문득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있음을 발견하고는 즉시 자기 머리에서 금관을 내려놓았습니다. 양어머니가 이를 나무라자 “어머니, 예수님께서는 가시관을 쓰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금관을 쓰고 그 앞에 있겠습니까?”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1206년 엘리사벳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 루트비히가 어린 몸으로 튀링겐의 영주가 되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남편인 루트비히는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였고, 엘리사벳은 남편을 지극정성을 다하여 섬겼으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며 부부는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한편 1221년에 작은 형제회가 독일에 정착하였는데 이는 엘라사벳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됩니다. 작은 형제회 독일 관구의 로데거는 한동안 엘리사벳의 영적 지도자로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이상에 대해 가르쳤고 엘리사벳은 이에 큰 감명을 받게 됩니다. 로데거의 뒤를 이어 엘리사벳을 지도한 사람은 마르부르크의 콘라트였는데, 어떠한 수도원에도 기거하지 않던 그는 매우 금욕적이고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콘라트는 그녀에게 엄격한 금욕과 영적인 자아 포기를 요구하며 체벌을 가하기도 하였고, 그녀에게 하인들의 돌봄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이 사망한 후에 그녀를 시성시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의 이상 안에서 엘리사벳은 성 안에서의 화려한 생활 속에서도 빈민구제를 염두에 두고 그들을 위해 많은 보조금과 식량을 나누었으며 때로는 손수 빈민들을 찾아가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남편 루트비히 성주가 독일 황제의 수행원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을 때는 남편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마침 전국에 큰 흉년이 들어 빈민들의 상태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성의 창고 문을 열어 이재민들에게 식량을 분배해 주었고, 심지어 자신의 의복을 팔아 그들의 곤궁을 풀어 주었습니다. 신하 중에는 그녀의 적극적인 구제사업에 불만을 품고 성주가 돌아왔을 때 그 일을 일러바쳤지만 루트비히는 백성들의 만족함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엘리사벳을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1227년 프레데릭 2세 황제가 성지에 십자군을 보내기로 하자 루트비히 성주도 이 원정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트비히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을 지나다가 사망하였고, 무엇보다도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 성주의 형제들은 엘리사벳을 학대하고 아이들과 두 명의 하녀와 함께 궁에서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새 주인의 적의를 살까봐 어느 누구도 그녀가 쉴 집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한 군주의 딸이요, 지금은 미망인이 된 왕후는 세 아이들과 두 시녀만을 데리고 한 겨울 깊은 밤에 거리로 쫓겨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생계를 위해 시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녀는 두 시녀와 함께 마르부르크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성당 근처의 작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이전의 생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야했지만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음을 오히려 기뻐했다고 합니다.
   후에 엘리사벳은 바르트부르크에서 복위되었습니다. 그때 왕비를 잃은 프레데릭 2세 황제가 엘리사벳에게 구혼했으나 가난과 은둔생활을 좋아하고 세속적인 것을 바라지 않았던 성녀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은 전부터 열망하던 수도생활을 실천하려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하고, 작은 암자를 짓고 기도와 박애가 넘치는 자선사업에 전념하였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심과 자선을 위한 고된 노동에 지친 그녀는 1231년 11월 17일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4세였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1235년 이탈리아 페루지아에서 그녀의 시성식을 성대하게 거행함으로써 성인반열에 올리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성인 성녀들은 교황이거나 주교, 혹은 신부나 수도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과 세 아이를 가진 가정의 어머니였습니다. 누구보다도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했던 엘리사벳은 남편이 십자군 전쟁에서 죽자 며칠이고 온 성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평범한 가정생활 속에서도 엘리사벳은 자기가 받은 모든 재산과 권력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느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며 사셨습니다.
   엘리사벳 성녀가 보여준 것처럼 성실한 가정생활 안에서도 얼마든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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