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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32 주간 토요일. 2006. 11. 18. 중계본동. 3요한 5-8. 루카 18, 1-8. 성경에는 왕을 세워야 한다는 계명은 없어도, 재판관은 반드시 어느 성읍에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신명 16, 18) 이 재판관은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시키지 위한 역할을 하며, 토라에 능통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늘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재판관입니다. 그런데 오늘 등장하는 재판관은 그런 재판관이 아니라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입니다.(루카 18, 2) 불의를 당하고 있는 과부에게 정의를 내려준다는 것은 애초에 틀린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안 되는 것이지만(이 불의한 재판관은 그녀를 거들떠도 안 본다),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지속적으로 청합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처지가 잇기에, 더 이상 물러난 곳이 없기에 오로지 이 재판관에게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여기는 이스라엘의 분위기에서 이 재판관은 지속적인 이 과부의 간청이 자신의 위신을 깎아내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관심도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된 간청은 자신도 귀찮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과부의 청을 들어주게 됩니다.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불의와 정의를 살펴보게 됩니다. 늘 이 재판관에 의해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을테지만, 그것은 오늘 예화의 논점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 예를 들으면서 자칫 ‘정의가 죽고 불의가 이기는 것이 아닌가?’ 라는 예감을 갖게 되는 것이 ‘역시 정의가 승리하는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경우에도 소망이 있다면, 이미 희망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기도하는 이에게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불의한 사람마저 끈질긴 간청을 물리칠 수 없다면, 과연 선하신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이야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신다”(루카 18, 8)는 것입니다. 내가 청하는 대로 끈질기게 붙는다고 그것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보시기에 올바른 판정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과부가 오로지 기댈 곳이라곤 재판관밖에 없었듯이 우리에게도 역시 하느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가 있겠느냐?”(루카 18, 8) 그런데 예수께서는 과연 그런 믿음을 가지겠는가? 라고 묻고 계십니다. 그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믿음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는 않다는 것이죠. 자기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향해 재빠른 응답을 해야 하는 우리인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며, 과부의 끈질긴 기도를 닮아 끝까지 나아가는 삶을 살아보지 않겠습니까? 그 믿음이 나를 구원합니다. 아멘. |
과부의 끈질긴 기도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1. 오후 10: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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