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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길잡이 :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있다. 배가 불러도 가슴이 고프면 살지 못한다. 가슴은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다. 참 사랑을 체험하고 구원을 체험하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이것 없이는 모든 것이 껍데기이다.
1. 멍 뚫린 내 가슴.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청년실업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장들의 실직이 한꺼번에 늘어나고 그 때문에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남편의 실직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떠나는 아내들이 많아진다는 보도도 있고, 가난을 비관하여 가족이 동반자살을 한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국민소득이 3-5만 불이 넘는 소위 말하는 최첨단 복지국가는 실업수당만 해도 생계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이고, 모든 복지시설이나 제도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런 복지국가의 자살율이 우리보다 더 높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이들은 "그놈들 호강에 받쳐서 제정신이 아니겠지 뭐!"하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설명되는 일이 아니다. 물질적인 궁핍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회학자들의 말을 빌려 굳이 병명을 붙이자면 「의미상실증」, 또는 「실존 공허증」 이라고나 할까?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모든 것을 다 가져보고 누려보았지만 남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의미를 느낄 수 없는 '멍 뚫린 내 가슴' 뿐이라는 말이다.
2. 멍 뚫린 가슴은 무엇으로 채우나?
아마도 우리나라는 단군이래 최대의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놓고 밤에 나다니기가 겁이 나고, 학생들이 마음놓고 학교에 가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유괴 살인 등 강력 사건과 청소년 자살도 급증하고 이혼도 급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비인간화 된 것이고, 우리의 가슴이 허(虛)해진 것이 사실이다.
정치판과 관료사회 뿐 아니라, 금융계, 대학, 병원, 법조계 등 구석구석이 참으로 골고루 썩어 총체적 부패상을 노출하고 있다. 공사판에서부터 법조계에 이르기까지 임기응변과 눈가림 아닌 것이 없다. 종교계라고 크게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런 사회상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허탈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각계각층에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를 위한 봉사라는 의식은 아직도 희박하다. 집을 짓는 사람도, 옷을 만드는 사람도,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모두가 누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일 안에서 참된 보람을 얻을 수 없다.
누군가를 참으로 위하는 삶이 없을 때, 어떤 것으로도 마음의 공허(空虛)를 채우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비록 일 자체가 성직(聖職)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자세가 없을 때, 그는 품꾼에 불과하게 된다. 가족을 위하는 깊은 사랑이 없을 때 가사 일도 무겁고 힘든 멍에가 될 수 있다. 이기적인 껍질을 벗고 남을 위하는 사랑의 삶을 살 때만이 의미상실증 과 실존 공허(空虛)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3.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훈(遺訓)처럼 새로운 계명을 주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사랑을 한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고픈 사람만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하려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내 기준을 절대시하고 그 기준으로 주변의 모든 '너'를 판단하고 재단하려고 한다. 내 방식대로, 내 기준대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가 되기 십상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은 우리를 위한 제물로 자신을 완전히 내 놓는 그런 사랑이었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친구간에도 상대방이 완전히 나와 같아지기를, 나에게 맞춰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완전히 소유하려고 하면, 참된 사랑은 이미 끝장이 나고 마는 것이다. 큰 관심으로 지켜보며 상대가 자기다움을 지니며 살도록 배려하는 것이 참 사랑이다. 주변의 모든 '너'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용납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이다.
이런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더불어 살면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여기에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길이 있음을 깨닫자.
일생을 살면서 내 모든 것을 내던져 나 아닌 누군가를 사랑해보는 체험이 없다면 그것은 불쌍한 삶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야한다. 참으로 '서로 사랑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길이며, 구원의 길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숙제임을 명심하자. 이 숙제를 풀지 못할 때, 부(富)와 명예와 권세를 다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빈 껍데기이며, 깡그리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말씀자료 : 유영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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