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 새 땅", 신앙인뿐 아니라 인간 모두가 갈망하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과학 기술이나 정치 경제적 제도에 앞서 인간들의 새로움임을 첫 독서는 전한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세상이 그것이다. 무엇이 새로운 인간, 하느님의 백성, 새 예루살렘을 만들 수 있을까?
수난을 앞두고 배신자가 드러나는 만찬 석상에서, 마치 승천을 앞둔 듯한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 뿐이다"라는 말씀과 더불어(부활시기에 읽히기에는 참 복잡한 시제 설정이다. 그만큼 깊은 신비를 함축하고 있어서일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안에 당신이 가실 새 하늘 새 땅, 우리에게 주시는 새 하늘 새 땅으로의 길을 일러주신다.
이제 눈에 볼 수 있게 우리와 함께 계실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현존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서로 사랑한다면 당신의 현존 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새 계명이고, 그것이 우리의 신원을 규정할 것이다("서로 사랑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구약(레위 19,18)에도 언급된 내용인데 어째서 새 계명일까?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라고 그 사랑의 기준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리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이 사랑일텐데 계명이란 또 무슨 뜻일까? 억지로, 강제성을 띤 규정으로 사랑을 하란 말인가?
성서의 "준다"는 말은 선물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신다는 말씀은 법규적 성격을 강조한 표현이 아니라 거저주시는 선물에 중심이 실려있다. 강제적 의무로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하고, 인간 본질의 신비를 드러나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의미에서 새 계명은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의 정체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사랑이 어째서 세상을 새롭게 하고,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할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답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었다. "아버지께 영광을" 드렸던 당신의 수난에, 아버지가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신" 부활이 따른다.
수난과 부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를 온전히 내어주는 일이, 사랑이, 새 계명이 거기에 발생한 것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 우리에게 그 관계를 전수하신다.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 그 사랑에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에로, 새 계명을 통하여. 쉬운 길은 아니다. 틀림없이 우리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2독서).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한 거절할 수 없는 초대다. 그 때 우리가 누구인지 드러나기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남궁 민 신부(원주교구
[강론] 새 하늘, 새 땅, 새 계명 - 남궁 민 신부님 2007.05.06
2007. 5. 7. 오전 10:14:51
글자
새 하늘, 새 땅, 새 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