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요한 14,7-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늘에서 더욱 빛나는 얼굴>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건너편에 앉아있던 한 아기가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다가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너무나 예쁜, 그래서 마치도 한 송이 꽃과도 같은 아이여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건넸습니다.
아이도 제가 건넨 미소에 생글생글 꽃 같은 웃음으로 응답해주었습니다.
제가 만일 처음 보는 아가씨나 아주머니에게 미소를 보냈다면, 그쪽에서 저를 정신병자 취급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니면 제가 무슨 엉뚱한 마음을 먹고 추파를 건네는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이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겠지요.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이, 의구심도 없이 누구에게나 환한 웃음으로 대하는 어린이의 얼굴은 그야말로 날개 없는 천사의 얼굴입니다.
이지라는 명나라 사상가는 동심(童心)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갖게 되는 본심(本心)을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게 되고, 진심이 없어지면 진실한 인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이들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고, ‘애들은 가라!’며 쫒아내는 제자들을 향해 나무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오 복음18장 14절)
왜곡된 교육구조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어린이들, 부모가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부담감에 허덕이는 아이들, 그래서 일찌감치 동심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이 좀 더 어린이답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어린이들이 학업에 대한 과중한 부담, 과외로 인한 스트레스, 부모들로부터의 지나친 기대감에서 벗어나 어린이 특유의 환한 미소를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온 생애는 오로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그분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오늘 우리가 아버지께 구할 기도 역시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해 달라는 기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내 안에 ‘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를 확장시켜나가는 일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나가는 일입니다. 세상 안에, 가난한 이웃들 안에 현존해 계시는 아버지를 극진히 섬기는 일입니다.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착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분께서 들어주시겠다는 것은 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워주시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분히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시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나라 확장을 위한 기도, 성공적인 복음 선포를 위한 기도, 상호 화해와 일치의 촉구를 위한 기도, 전쟁의 종식을 위한 기도, 상호 배려와 용서를 위한 기도들은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들어주실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보다 영적인 기도, 보다 복음적인 기도, 세상과 이웃을 위한 기도, 결국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셨던 기도로 승화되어나가길 기원합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