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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제1독서 : 사도 14,21b-27
제2독서 : 묵시 21,1-5
복음 : 요한 13,31-33a.34-35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사도 14,21)
예루살렘의 대사제가 딸려준 병사들과 함께 예수를 믿고 따르는 무리를 잡아들이기 위해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바오로는 한숨도 지체하지 않고 다마스커스로 말을 몰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열렬한 율법의 수호자였던 바오로에게 율법이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자신의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었으며, 그러기에 그러한 사람들을 잡아 처벌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조국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다마스커스의 성벽이 보이는 먼 언덕에서 바오로는 야훼 하느님 신앙의 수호자였던 옛 예언자들 마냥 자신도 이제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바쳐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자만에 빠져 마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 마냥 바오로도 그러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당신을 배반한 사람들을 잡아 삐뚤어진 그들의 신앙을 징벌하고 당신의 백성을 갓길로 들어서지 않게 제 온 힘을 기울여 지키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오만도 잠시뿐,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쏟아지며 바오로는 말에서 떨어져 소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누구보다도 주님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했던 바오로이었지만, 이제는 죄인의 모습으로 한치 앞도 못보고 손을 휘저어 나아가야 하는 죄인으로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말에서 떨어지고 소경이 된 바오로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왜 내가 죄인과 같이 이런 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동안 난 얼마나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 율법을 위해 이 먼 길을 달려왔는데... 왜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죄인으로 판단 받아야 하는가? 야훼 하느님 당신의 일을 하고자 하는 저를 왜 이렇게 엄한 팔로 치시나이까?”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당함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의로움을 확인 받고자 하였던 바오로에게 들려온 말씀은 바로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며 우상시하여왔던 바로 그 예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사오로야, 사오로야 너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 병사의 도움으로 성안에 들어가 아나니아로 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눈에서 비늘을 제거하고 다시 세상을 보게 된 바오로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도로 이방시 여겼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정말 이방인에게 참된 진리와 구원의 길을 알리는 사도로 변화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바오로는 자신의 첫 번째 선교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거주지였던 안티오키오 교회로 되돌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딛고 소아시아를 들려 주님의 말씀을 전한 바오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애에서 얻었던 가장 중요한 진리 하나를 마지막 교훈으로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외적인 박해도 박해려니와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모든 오만을 버리는 일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이 말에서 떨어져 소경이 되는,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자만과 모든 욕심을 버리고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천덕꾸러기 바보의 아니 죄인의 취급을 받는 그러한 상태로까지 자신을 낮추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때만이 지금까지 눈을 가리워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던 비늘을 눈에서 제거할 수 있으며, 참된 구원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2천년 전에 한 바오로의 이 말씀은 또한 오늘에 살며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위로의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이 우리들에게 보여준 참된 사랑을 실천하여 모두가 한 형제 되는,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려고 자신을 바쳐 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의 세상은 너무나도 힘겹고 어려운 커다란 괴물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그러한 세상의 영향으로 모든 이의 마음에 아니 바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까지 자리 잡은 이기적인 욕심과 아집일 것입니다. 남들의 이목만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이 합쳐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괴물이 자라고 있는 것이며 주님께로 향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뒤로 물러나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그리고 주님의 일꾼으로 이 세상에 주님의 왕국이 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밧줄에서, 비록 옷이 찢기고 살이 묻어나는 고통이 있다하더라도, 그 이기적이고 오만의 밧줄에서 탈출하여야 하는 아픔을 감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은 바로 주님을 우리 생명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며 주님의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인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분의 참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분을 따르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요리하는 어머니 곁에서 맛있는 음식을 조금씩 미리 맛보는 아이”와 같은 그런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희망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희망은 믿음 가운데 생기는 것이며, 바로 하느님께서 주실 영광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는데서 확고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을 지켜도 단순히 하루의 휴식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안식의 일부분을 비록 유한한, 그리고 제한된 즐거움이지만, 미리 이 지상에서 맛보는 데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이 모인 본당은 특별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왕국이 실현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듯이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여 주님의 제자된 것을 보여주며, 바로 이 공동체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는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에서 떨어져 죄인과 같은 처지인 소경이 된 다음에야 참으로 주님의 일꾼으로 바뀌었듯이, 우리들도 자신의 이기적인 아집이라는 말에서 떨어질 때만이 참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때때로는 자신만이 바보가 된 듯하고 때로는 활기가 없는 맥 빠진 사람이 된 듯 한 느낌도 들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슬기로움은, 진정한 활력은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억제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등불입니다. 우리들이 참된 등불이 되기 위해서, 우리들은 함께 살고 있는 이곳에서부터 주님의 모습이 발견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처음 주님을 받아들일 때의 그 마음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면,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며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분명 주님은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심어주실 것이며, 우리와 함께 이곳에 당신의 나라를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곳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인 중의 신앙입니다. 분명 주님이 함께 하여 주시고 당신의 나라를,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생각해주는 사랑이 깃든 나라를, 새 하늘과 새 땅에 건설된 참다운 의미의 공동체를 우리 안에 건설하여 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이 미사 동안에 당신을 제물로 바치신 우리의 스승 예수님과 함께 우리들도 우리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며, 그분의 나라가, 사랑이 깃든 공동체가 우리 가운데 이룩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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