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나의 성소는? ♡ - 봉봉 신부님 /2007.04.29

2007. 4. 30. 오전 9:58:01

글자


    ♡ 나의 성소는? ♡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입니다. 오늘도 저희 남산동 신학교에는 주일학교 학생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 것 같습니다. 신학생들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께서도 학생시절에 성소주일이라고 신학교나 수녀원 혹은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때의 방문이 수도성소에 대한 갈등을 불러일으켰었나요? 이렇게 우리는 ‘성소’라고 하면 신학교와 수녀원을 생각합니다. 곧 ‘성소’를 ‘특별한 불림’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소를 받은 사람 하면 당연히 사제나 수도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소의 참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우리가 나아갈 성소에 대해서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이 되도록 합시다. ‘성소(聖召)’는 말 그대로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하신 분이 부르시기 때문에 성소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소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느님 뜻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죠. 그런데 아브라함의 삶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서 끝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그렇게 살도록 계속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 아드님을 그들에게 보내주셔서 당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알려주기 위해서 온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도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계속 선포했지만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완고한 유다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를 시작했고 덕분에 우리까지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거룩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 받은 것’은 가장 근원적이고도 중요한 성소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주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듯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낳아 기르면서 교회를 성장시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혼자서 살면서 교회를 위해 전적으로 봉사하겠다고 사제 혹은 수도자의 삶을 택합니다. 이렇게 결혼성소, 사제성소와 수도성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 살되 어떤 양식으로 사느냐의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성소에는 그 성소에 맞는 삶의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사진의 제목을 ‘걷고 싶은 길’이라고 붙였습니다. 벚꽃이 만발해 있는 폭삭폭삭한 흙길, 이런 길은 누구나 걷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덤불이 우거진 길은 아무도 걷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한 성소를 사는 길은 때로는 걷고 싶은 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가시덤불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그 길을 끝까지 가야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저희 동네에 텔레비전이 두 대뿐이었습니다. 그때 여로라는 연속극이 있었는데 그 연속극을 할 시간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그 두 집에 다 모였습니다. 장욱제와 태현실의 연기에 온 동네 사람들이 울고 웃고 했습니다. 신나게 보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화면이 지지지 거리면서 떨립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가서 안테나 잡고 이리 저리 돌리면서 방향을 맞추어야 합니다. 방향이 맞으면 다시 화면이 깨끗하게 잘 나옵니다. 이처럼 텔레비전이 아무리 좋아도 안테나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면 볼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안테나를 바로 세우고 있어야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맞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므로 성소주일은 내가 택한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새롭게 인식하고 그 동안 비스듬하게 넘어갔던 우리 마음의 안테나를 바로 세우고 내 삶에 맞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점검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걷고 싶은 꽃길이든 가시덤불 같은 길이든 나의 길을 기쁘게 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는 날입니다. 형제 자매님, 제2독서에서 그런 길을 가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용기를 주십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형제 자매님,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미사를 통해서 무엇보다 먼저 나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셨음에 감사를 드리고, 또 나에게 허락하신 내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면서 그 삶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뜻을 잘 행하기 위해서 구하는 자식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으로,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대구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
2007.04.29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 민병섭 신부님07.04.30조회 33[강론] 어매이징 그레이스 - 류 해욱 신부님 /2007.04.2907.04.30조회 32[강론] ♡ 나의 성소는? ♡ - 봉봉 신부님 /2007.04.2907.04.30조회 34[강론] 어매이징 그레이스 [류 해욱 신부님 ] 2007.04.2907.04.30조회 32[강론] 부활 제4주일 [문호영신부님]07.04.30조회 322007.04.29 /[강론] 내어주고 쏟음[서공석신부님]07.04.30조회 32[강론] 주님을 따름[김용배신부님] 2007.04.2907.04.30조회 32[묵상]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4월 28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07.04.28조회 33[강론] 오직 하나 부활하신 주님뿐[이수철신부님]07.04.28조회 322007년 4월 28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묵상] 영원한 생명의 말씀[유광수신부님]07.04.28조회 32[동영상] TV 매일미사 2007년 4월 28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07.04.28조회 33부활 제3주간 금요일-지금부터입니다 - 민병섭 신부님07.04.28조회 32가톨릭과 개신교의 관계 - 하성호 신부님 /부활 제3주간 금요일07.04.28조회 33영(靈)의 뿌리 내림 - 이기정 신부님07.04.28조회 32부활 제3주간 토요일 2007-04-28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 한창현 신부님07.04.28조회 32(부활 제 3주 토요일(00)/내가 곧 생명의 빵이다 - 김웅태 신부님07.04.28조회 322007.4.28.토/생명의 말씀 - 김유철 신부님07.04.28조회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