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들은 어디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만의 특유한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어서 살아가며 어떤 생명체이든 생명력을 얻는 그 곳이 그 생명체의 존재의 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를 보면 떡잎이 나고, 가지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은 그 나무의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해서 이뤄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에 있어서는 뿌리가 그 나무의 존재의 뿌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는 흙으로부터 그 힘을 얻고 흙은 하늘로부터 그 힘을 얻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모든 존재의 뿌리는 하늘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는 어떠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의 뿌리는 무엇이며 나아가 이 뿌리는 어디로부터 힘과 생명력을 얻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람은 다른 동식물과 달리 영혼을 지니고 있기에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말씀이시겠지요? 사람의 존재의 뿌리는 영이며 하느님께서는 이 영에 생명을 주신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에서 보면 베드로 사도는 애네아스의 중풍을 고쳐주고 죽었던 타비타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 살려냅니다. 움츠려 들었던 다른 제자들처럼 베드로가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 생명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알아듣고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명을 줄 수 없는 육적인 것에 존재의 뿌리를 더 이상 두지 않고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영적으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거북해 하던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났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더 이상 그들에게 생명력이 없다고 그들은 판단했기 때문에 떠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지만 각자 스스로가 어디에 존재의 뿌리를 두고 살려고 하는지에 따라서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적인 것에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두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생명력을 얻으려고 세상적인 것을 취하고 예수님의 말씀은 더 이상 그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은 어떤 말이나 상황의 결과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들어 와야 하고 자신의 마음에도 들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에 존재의 뿌리를 두어서 영원한 생명력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완전하거나 영원하지 못함을 우선적으로 알기에 완전하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부족한 자신의 힘이 아닌 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으로 생명이 주어지기를 청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세상의 풍요와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 속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려고 응답하신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나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신 물음을 우리에게도 던지십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한 적도 있었지만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라고 대답한 베드로처럼 결국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