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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와 함께하는 묵상> : † 저는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
지난 부활 제2주간 금요일부터 오늘(부활 제3주간 토요일)에 이르기까지(부활 제2주일을 제외하고) 8일째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생명의 빵'에 관한 긴 대화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핵심내용은 다음의 말입니다.“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입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러분에게 여러분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뭘 하는 사람인가? “나는 하느님의 길로 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나는 오늘도 목적하는 바와는 달리 일상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에 빠져 ‘하느님의 길’을 자주 잊곤 합니다.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기적 욕망에 눈이 먼 생활이 아니었나 반성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묵상한 요한복음 6장은 '생명의 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도 그 연장선에 있는 내용으로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며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는 내 살(肉,flesh)이다(요한 6,51)라고...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ㅇ말을 들은 군중들과 제자들은 난망한 대화로 수군거립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너무 어렵습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이런 투의 말이며 분위기입니다. 그러면서 제자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분 곁을 떠나갔으며, 예수께서는 당신에게서 떠나가는 그들을 향하여 당신이 이미 하신 말씀에 대하여 구차(苟且)한 설명(해설)을 더 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떠나게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는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느 편입니까? 떠나는 편입니까, 아니면 베드로편입니까? 당연히 베드로편이라고 대답은 하겠지요. 그러나 실제의 신앙생활도 그러한지는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떠났느냐?를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설명이 어려워서 그럴까요, 아니면 듣든 자들의 영적 눈과 마음이 닫혀져서 그런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생명의 빵에 대한)의 뜻을 그저 머리로 생각하여 알아듣고 이해(攄得<터득>)하는 습관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이성(지식,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면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말씀은 주님의 삶의 길을 가능한 가깝게 체득(體得)함으로써 영적으로 받아들일 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톨릭의 교리에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간단히 분석해 보면, 현재의 가톨릭 교리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 천주교회(가톨릭)의 중심 사조는 여전히 이성(理性,ratio)을 중심으로 하여 신앙의 가르침(敎理)이 전하고 있는 까닭에, 여기에 익숙해진 교우들 역시 암암리에 주지주의(主知主義)적 경향이 비교적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생명의 빵'에 관한 담론(談論)도 여전히 인간 이성으로 알아들으려 애쓰는 경향이 농후(濃厚)해 보입니다. 인간 이성을 통하여 인식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지만, 인간 이성으로는 불가해(不可解)한 신비의 영역에 대하여 열려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복음의 주제인 '생명의 뻥'을 우리 교우(敎友)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성체성사(聖體聖事,미사)'와 관련하여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미사를 중국어로는 '감은제(感恩祭)'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 感恩祭)의 본뜻을 그대로 잘 드러낸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으로 분류되는 마태오와 마르코 그리고 루가 복음에서, '최후의 만찬'에 관하여 전해주는 공통된 전승(傳承)이 있는데, 이 최후의 만찬은 오늘날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Missa)의 원형(原形)으로 감사제(Eucharistia)로 불리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생명의 빵'의 의미는 미사에 대한 상잉적 의미를 모두 내포하는 것으로서,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둘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성찬의 전례, 특히 성체성사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면 오늘 복음은 말씀의 전례에 관한 대목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주님의 말씀, 곧 복음은 성령의 감도에 의해 기록된 것이며 그 자체로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말들이 난무합니다. 언론매체,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쓰레기 같은 정보가 얼마나 많습니까? 게 중에는 진리를 거역하고 사회를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거짓 말씀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을 통해서, TV와 라디오를 통해서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 놓는 드라마나 대담들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습니다. 육적인 지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좀더 편리하게 살고, 삶을 좀더 윤택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영혼을 살찌우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은연중에 세상의 지식들은 돈이 최고라고, 건강이 최고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육적인 지식에 넘어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즘 <다빈치 코드> 같은 반그리스도교 서적들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교 진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거짓종교로 몰아세우는 뉴 에이지 계통의 서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많은 부수가 팔렸다고 하는데, 가톨릭 신자들도 접하고 나서 반신반의한다고 하니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무튼 우리 신자들은 세상의 거짓된 말씀에 속아 넘어가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것과 대적하여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거짓 논리에 휘말리지 마십시오. 진리는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복음적 실천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진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주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 사람들입니다. 성서 말씀은 우리 안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믿음으로 듣는 말씀은 용서를 가능하게 하고, 두려움을 없애 주며, 내적 평화와 사랑이 넘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체험하게 이끌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이미 실천까지도 포함한 말입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생명력이 충만한데 어찌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이제 오늘 복음 말미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는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의 생애를 압축(壓縮)하여 전해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요한 6,35 과 요한6,48)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입니다"(요한 6,51). 요한복음을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생명을 주는 음식이라고 하시며,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지내던 시절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먹었던 만나(manna)와, 그 밖에 우리가 먹는 그 흔한 빵과 다르다고 선을 분명히 그은 것입니다. '생명의 빵'에 대한 대화 가운데 있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당신들 안에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中略)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요한 6, 53- 56)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곧 '믿는 이(信者)'들이 성체성사(感恩祭,미사)에서 그 분의 살(몸)과 피를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심으로 영적으로 충만하게 되고 그 분과 일치( 一致)하게 된다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찬례(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고 그 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은 단지 특정 사건(최후 만찬)을 기억하고 거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포함하여 예수께서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보여준 그 삶, 그 사랑을 공유(共有)하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성체성사(미사)에 참여(參與)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을 '믿는 이(信者)'들, 바로 우리를 하나가 되는 관계(一致)를 이루어내는 성스러운 사건(聖事)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보면, 쉽게 타성(惰性)에 젖기도 하고, 일상에 안주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 한심(寒心)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성체성사(미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 그 분의 조건 없는 사랑의 삶에 조금이나마 부응(符應)하도록 마음을 다져야겠습니다. 사랑의 성사인 성체성사(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 그 분의 무한한 사랑을 거듭 상기(想起)하며, 그 사랑이 내 삶에 배어들고 스며들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아멘)....◆ -두올묵상팀 / 양재오 보나벤뚜라, 김영훈 미카엘 신부- |
[묵상] 저는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김영훈신부님] 2007.04.28
2007. 4. 28. 오후 12: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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