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28 /[묵상] 성체성사로 오시는 영원한 생명의 빵

2007. 4. 28. 오후 12:46:02

글자
<야곱과 함께하는 묵상> :  † 성체성사로 오시는 영원한 생명의 빵 †

(오늘 묵상글은 지난 8일간의 복음인 요한복음 6장(생명의 빵)에 대해서 함께 묶어서 묵상한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6장은 주님께서 말씀(복음)과 빵(성찬)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교훈과 비젼을 동시에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선 복음을 성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복음 내용대로 라면 구원을 받는 길은 간단합니다. 썩어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구하는데 힘쓰고, 주님을 믿으면 됩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복음에는 없으니다만 연결된 요한복음서의 내용을 보면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5)...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상을 살면서 가장 갖고 싶고 마음을 두고 싶은 것은 무었입니까? 현명한 아내와 자식, 돈, 호화아파트, 자가용, 보석, 애인....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서 초라하게 죽으셨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자들이 들으면 고개를 그떡이겠지만, 비신자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아멘한다고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고 빈정대면서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예수쟁이, 천주쟁이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엣날 여의도광장에 가면 초라한 모습의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그 초라한 비행기의 역사가 지금부터 10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비행기에 비하면 초기의 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고, 비행기라고 부르기도 우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학습과 연구개발과 비전 창출을 통하여 지금의 우주선이 탄생되었고, 또 지구촌 전 영공에는 인공위성이 떠 있습니다. 학습과 연구개발 그리고 비전 설정이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늘복음과 연결 성구에서 우리들에게 비젼을 말씀하십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너희를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선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요한복음 6,32-40)

일전에 공부방에서 나와 내려오는데 계단에 식빵 한 조각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공부방에서 간식으로 준 것인데 아이들이 먹다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배고플 아이들을 위해 어려워도 매일 간식을 준비해 주고 있는데 그 간식을 귀한 줄 모르고 이렇게 버리다니.............! 마음이 멈추자 발걸음도 멈추어 버려진 빵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버려진 빵’은 쓸모없이 버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빵 주위에는 많은 개미들이 몰려 있었고, 사람에게 버려진 빵은 개미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기적 같은 축복으로 귀한 양식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 교육장에 버려진 빵처럼 세상에서 버려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운명은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옹기쟁이 주님 손 안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축복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빵을 하찮게 여겨 버렸지만, 개미들은 그 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빵을 대하는 개미들의 모습이 아주 다양하였습니다. 첫째. 그저 부산하게 움직이기만 하는 개미, 둘째. 빵 위에 올라 가만히 있는 개미, 세 번째. 전혀 다른 곳에서 빵을 찾고 있는 개미, 네 번째. 아주 조금이지만 빵 조각을 물고 집으로 열심히 가는 개미 등...그런데 네 번째에 속한 개미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곧 소나기를 퍼부을 기세인데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버리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반드시 큰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버리지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영접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오늘복음에서 보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거룩한 생명의 빵인 성체로서 영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을 세상 구원을 위한 생명의 빵으로 내어 주시어 당신을 먹고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체 성사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기적의 빵 → 생명의 빵 → 성체 성사입니다. …

1. 기적의 빵(마태 14,13-21; 마르 6,30-44; 루가 9,10-17; 요한 6,1-14).

기적의 빵 이야기는 공관 복음과 요한 복음에서 다 언급되고 있고 내용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은 거의 다 일치하여 전해 줍니다. 즉 중심 내용으로는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시려고 했으나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가르침을 전하고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는데 저녁때가 되었지만 외딴 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으며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찼고, 남자만도 오천 명이 넘었다는 기적의 빵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네 복음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통 요소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남은 음식이 "열두 광주리", 먹은 사람은 남자만도 "오천 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온 군중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보였기 때문에 그들을 측은히 여기셨고(마르 6,34),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셨며 기적을 행하시어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던 것입니다.
공관 복음에는 전해지지 않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기적의 빵' 이야기 다음에 '생명의 빵' 이야기가 연결되어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즉 예수께서 '빵의 기적'을 베푼 의도는 결국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 51)이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으로 강조됩니다다.

2. 생명의 빵(요한 6,22-71)

1)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요한 복음은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적의 빵을 배불리 먹고 예수님을 다시 찾아왔던 군중들에게 예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요한 6, 27)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요한 6,29)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들이 다시 "무슨 기적을 보여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 하며 자기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 주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며, 그분이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빵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하셨습니다(요한 6,32). 그들이 다시 그 빵을 달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바로 생명의 빵이며 이 빵을 먹어야 영원히 산다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께서 생명의 빵으로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과정에 대한 것을 성부와의 관계와 관련지어 가르쳐 주는 중요한 계시적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미 말했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시는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그렇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요한 6,35-40)

2)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에서 행한 이 가르침을 듣고 웅성거리며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인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말이 되는가" 하
하지 않았다(요한 6,41-42). 그러자 예수께서는 다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44)라고 하신 후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6,47-51).

3)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확고한 소신

예수께서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며, 그 빵을 먹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신 가르침은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예수님의 소신이 담겨진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기까지 예수님을 따라왔던 유다인들도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으나 예수님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열두 제자에게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셨다(요한 7,66-67).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요한 6,68-69)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통해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으로서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으로 오시는 구체적 방식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세우신 성체 성사를 통해 제시됩니다.

3. 성체 성사로 오시는 영원한 생명

1) 생명의 빵을 모시는 성체 성사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께서 그것을 가장 구체적인 방법과 제도로 만들어 주신 것이 성체 성사입니다. 성체 성사는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방법으로 주시고자 했던 가장 핵심적이며 최고의 걸작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결국 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성체로서 모시는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가르침을 베풀고, 빵의 기적을 행하시고 결국 사람들을 깨닫게 해주시고자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의 몸을 성체 성사 안에서 내어 주어 그것을 영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며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체 성사는 모든 성사들 중에 핵심이 되는 성사입니다. 세례 성사는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여 교회 내의 다른 성사들을 수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결국 성체 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고 하느님과 일치하고 이웃들과 일치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체성사 생활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이유는 성체를 영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만이 성체를 타당하게 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올바른 생활을 영위하고 성체를 모시는 생활이 지속된다면 그는 자신의 착한 행실과 믿음을 통해 구원에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성체 성사

예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어질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영적인 자신의 살과 피에 대해 완고한 유다인들에게 소신을 갖고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 53-59).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하느님 아버지의 힘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힘에 의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성체 성사를 통해 지속되며 그 가르침이 제도로 결실을 맺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약을 기념하는 성체 성사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들 때 성체 성사를 세우시며 이것을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으로서 거행하고 당신을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는 마태오 복음 26장 17절-30절, 마르코 복음 14장 12절-25절, 루가 복음 22장 7절-20절, 요한 복음 13장 26절-30절, 고린토 전서 11장 23절-25절에서 전해 줍니다. 이 중에서 고린토 전서에 나오는 바오로의 증언이 가장 오래 된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1고린 11, 23-25).

사도 바오로는 성체 성사를 통해 주님의 죽으심과 재림을 기억하고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하여 영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그러니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1고린 11, 27-28).

이렇게 우리가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하면서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성체 성사 안에서 영하는 생활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상이 오늘복음과 연결된 복음의 묵상내용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무리 묵상을 하겠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착각 중에 하나가 『외적인 성공이 행복을 보증 한다』라는 생각입니다. 이 착각에 의해 인간은 지금 현재 행복하지 못한 것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이 외부적인 어떤 것의 부족이기에 만약 나에게 더 좋은 집과 차, 혹은 멋진 직장이 있다면, 그리고 로또 복권에 몇 백억이 당첨된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상상합니다.

그러나 오늘복음에서 보듯이,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결단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성공은 행복을 보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외적인 성공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현재의 감정을 증폭시킨다고 말입니다.

즉, 돈이나 승진, 그리고 복권 당첨 등 겉으로 보이는 성공은 현재의 감정을 부풀립니다.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에서의 외면적인 성공은 마음을 더욱 평온하게 하여 행복한 생활을 가져오지만, 이와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외면적인 성공은 오히려 이러한 상태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즉, 행복을 이루어 놓지 않는 상태에서 많이 가지는 것은 삶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 한 예가 도박이나 복권으로 일확천금을 누린 사람들의 삶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현재 행복을 누리는 사람만이 돈 등 외적 성공이 행복을 더 크게 할 수 있기에 우리가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곳은 외면적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적 정신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적인 무엇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고, 더 많은 성공을 원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인간들의 속성이 자그만 소원이라도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 행복했던 순간은 금방 사라지고 이보다 더 많은 무엇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또 다른 환상을 찾아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인간의 근본 욕구와 관련이 있고 이 같은 욕구를 가지기에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성공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행복은 외적인 조건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적인 조건을 개선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의 마음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변화 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에 이어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에 군중들은 열광합니다. 그래서 지난주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예수님을 찾습니다만 예수님은 자리를 피합니다. 그러나 군중은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의 감흥이 너무 컸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선교 본부인 가파르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아마 이 당시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으면서 생각했던 점은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과 같은 무엇, 영광스럽고 우리가 만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외적이고 가시적인 무엇, 노력하지 않고도 주어지는 횡재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삶에 의미를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그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냉담합니다.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면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썩어 없어질 양식」과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이 비교 되는데 여기서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은 구체적으로 예수님 존재 자신과 성체성사에서 이루어질 성체와 성혈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폭넓게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당시 군중들이 가졌던 마음, 어쩌면 오늘의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마음에 대한 비판입니다. 서두의 말씀과 비교해서 말씀드리자면 우리 삶의 의미를 주고 행복을 주고 생명을 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무엇, 29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일과 관련해서 이야기하자면 하느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과 같은 내적인 정신이 바로 하느님의 일을 위한 우리의 행위요, 썩어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기 위해 힘쓰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내적 보화를 준비하는 일상의 삶이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두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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