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부활신앙을 사는 공동체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묵상길잡이 : 부활장면을 찍어 둔 비디오라도 있다면, 부활을 믿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죽음과 부활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신앙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이들에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부활은 이미 신앙의 대상이지 감각의 대상이 아니다.
1. 부활장면 찍어 둔 비디오는 없나?
중. 고등부 학생들에게 부활교리를 하던 중이었다. 신부님의 교리를 열심히 듣고 있던 한 중학생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는 "신부님, 부활 장면 찍어둔 동영상 같은 것은 없습니까? "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장면을 찍어 둔 비디오라도 있으면 좀 쉽게 믿을 수 있겠다는 태도였다. 그러자 "임마, 그 때 비디오가 어디 있었겠어!" 하면서 다른 학생들이 점잖게 나무랐다.
오늘 복음의 토마 사도뿐 아니라, 현대 자연과학적인 교육을 받아온 우리들에겐 "예수님은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부활교리를 믿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수 부활의 장면을 찍어 둔 비디오 테입이 있다면 누구나 예수 부활을 믿을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참으로 죽었다면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는 자연과학적인 상식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는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이 없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복음서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무덤에 묻히셨다고 예수님을 완전히 '죽어버린 자'로 여긴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를 눈으로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 자만이, 죽음과 부활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이미 믿음의 대상이지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2. 부활을 증거하는 삶
예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단순한 지적(知的)인 동의인가? 이것으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부활신앙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이며,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제2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나는 처음이고 마지막이고 살아있는 자다. 나는 죽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있다." (묵시1,17-18)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부활신앙은 또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하신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 때 그분과 함께 부활할 것을 믿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부활신앙은 이 지상의 삶이 끝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이 현상적인 삶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을 향해 열린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다. 그래서 부활한 예수를 체험한 사도들은 현실의 욕심을 뛰어넘어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대로 나누어주곤 하였다."(사도 2,44-45) 사도들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었기에,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완전한 자기 비움과 철저한 나눔의 공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은 우리의 삶을 철저히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우리의 삶이 지독히 자기중심적이며, 이 세상이 전부인양 집착하는 것은 부활한 예수님이 들어간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3. 설익은 신앙인?
우리 주변엔 "나는 죽고 난 후의 영원한 생명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세상에 살면서 좀더 인간답게, 멋있게 살려는 것뿐이지!"하며 신(新) 세대다운 신앙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수도자도 가끔 만난다. 이는 '무신론적인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좋게 보면 사춘기적인 순수함이고, 신앙인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멋있어 보이려고 진한 유혹을 이길 수 있고,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 할 수 있을까? 멋있어 보이려고 순교를 할 수 있을까? 부활에 대한 확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없는 신앙은 성숙한 참 신앙이라 할 수 없다.
복음은 토마 사도의 불신앙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토마 사도가 특별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토마 사도가 예수의 부활을 처음부터 믿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이 처음 발현했을 때, 사도들의 무리 안에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주일미사에 참례하면서 말씀과 성체 안에서, 그리고 믿음이 두터운 형제들 안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난다. 교회를 떠날 때, 그리스도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는 성사이다.]고 하는 것이다. 부활한 예수님은 믿음공동체 안에서 만날 수 있다. 교회를 떠날 때 믿음도 시든다. 주님 당신 성령을 통해 저희에게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는 믿음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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