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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예수회원의 편지 / 노역에 처해진 날개
나는 지난 목요일 오후에 젊은 작가 한 명을 만났다. 거의 4년 만에 만나는 그녀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못 알아보는 무례를 범할 뻔했다. 왜냐하면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이세상 끝에 간신히 붙어 있을 만큼 몹시 힘든 모습으로 나를 당황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친했던 그녀를 앞에 두고 어색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가볍게 나의 손을 잡은 그녀는, 깊은병을 앓은 기색이 역력한 창백한 얼굴로 쓴 웃음을 지으며 나와의 해후를 진심으로 기뻐하는 몇마디 말을 건넸다. 나는 그녀와 예전의 문학 동아리 시절에 자주 이용하던 허름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세종문화회관의 높은 계단에 앉아 옛날 맛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양이 꽤 많은 샌드위치 빵을 하니만 사서 둘로 나누어 먹기로 했다. 우리 뒷켠에서는 봄볕에 얼굴을 검게 그을린 인부들이 황사가 물러간 후 공연장 건물을 물로 씻어 내고 있었다.
나는 빵을 둘로 나누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매일미사에서 영하는 성체가 과연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오는가? 과연...?’ 이런 생각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자못 진지해졌다. 나는 그녀의 힘든 이야기를 오래도록 듣고만 있었다.
계단에 앉은 우리를 가로질러 그날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무렵,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지기로 했다. 그녀가 고민한 핵심은 ‘거듭나려 하지만 늘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불행한 가족사와 끝끝내 불화하려는 자신’ 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함께 나누어 먹는 빵이 성사(聖事)로서 그녀에게 작은 위안이 되어 주길 간절히 기도하였다. 노역(勞役)에 지쳐 있는 우리의 축 처진 두 어깨 위로 등을 두드려 주시기 위해 오시는 성령을, 너무나 쉽게 간과하여 산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외로움의 폭넓은 지류를 건너다(어느 젊은 예수회원의 편지)중에서-
( 김상용 도미니코 수사 ) |
2007.04.14 /[묵상] 노역에 처해진 날개 - 김상용 도미니코 수사
2007. 4. 16. 오전 8: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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