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부 내 금요일 - 민병섭 신부님

2007. 4. 16. 오전 8: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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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20세기, 유리화(부분), 성 조지 성당, 드봉, 영국

 

 

 

▶성화 해설

일곱 제자는 충만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시사한다. 많은 물고기는 사도들의 인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신앙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있으며, 그 옆에는 숯불 위에 생선이 놓여 있다.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와 함께 같은 빵과 생명을 나누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부활 팔부내 금요일

 

 

우리는 원래의 요한복음은 20장까지이며 마지막 21장은 추가로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통상 21장의 저자는 요한복음의 원저자를 추종하던 요한학파에 속하는 사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추가된 21장을 단락으로 구분하면, 티베리아 호수에서 일곱 제자에게 발현한 예수님(1-14절),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특별한 관계묘사 및 사명전달(15-19절),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와의 관계(20-24절), 그리고 마지막 결어(25절)의 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추가로 편집해야 했던 이유는 아마도 예수님을 배반한 적이 있는 베드로(요한 18,15-18.25-27)를 제자단의 으뜸으로 인정하고 내세우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특별한 관계를 엮어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21장에 ‘베드로’ 라는 이름이 지나칠 정도로 빈번히 등장하는 것도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서 전체에 베드로의 이름은 총 198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서간에 나타나고 있는 9번(1고린 4번, 갈라 3번, 1베드 2번)을 빼고는 모두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두루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총 40번 베드로의 이름이 발견되는데, 이를 구분하여 보면,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5번, 최후의 만찬에서 십자가 죽음 직전까지 18번, 부활사화 20장에서 4번 나타나고 있으며, 부활사화 추가부분인 21장에서 무려 13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성서학자들은 21장의 저자가 초대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베드로의 교회론적이고 사목적인 주도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21장의 저자는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표현을 통하여 베드로와 부활한 예수님, 그리고 교회의 긴밀한 삼각관계를 조명(照明)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베드로의 역할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21장의 이야기는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갈리래아 호수 혹은 게네사렛 호수로 나오는 이 호수는 그들이 예수님과 처음으로 만난 곳이며, 그들이 불림을 받았던 곳이기도 한 곳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그들은 예수님과 동고동락(同苦同樂)을 시작하였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이 이곳 갈릴래아에서 원래 하던 고기잡이를 통하여 부활한 예수님을 뵙게 된 점도 우리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곧 부활한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어느 특정한 장소나 상황에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체험되고 있다는 것이며, 바로 우리들도 우리의 삶에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가 배를 탔다고 했는데, 여기서 배는 교회를, 7이라는 숫자가 풍요와 완전(完全)을 뜻하고 있는 것으로 교회 전체를 말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새 그물질을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주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따랐을 때에야 엄청난 고기가 잡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초기 교회의 선교의 활동이 그들 자신만의 수고로는 헛되었지만 부활한 예수님의 지시(指示)와 명령을 따를 때만이 성취와 보람과 기쁨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물에 걸려든 고기의 숫자가 ‘153마리’ 라는 점도 상징적인 의미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일찍이 153은 1부터 17까지의 수를 다 합한 것으로 보편성과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17 또한 10이라는 완전수와 7이라는 완전수를 합한 절대완전수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제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질 선교의 활동으로 구원을 얻게 될 사람들의 숫자는 우리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여 숱한 고기를 그물로 건진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에게 신앙인의 참된 모습을 묵상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실의에 잠겼으며 주님을 떠나 주님을 따르기 전의 생활로 되돌아갔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난 그들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며 또한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것입니다.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빈손뿐 이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 무수한 고기들을 낚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다시 희망이 솟아올랐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베드로 사도는 오늘의 제1독서에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라고 당당하게 유다의 지도자들 앞에서 외치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예수님을 떠난 삶은 헛손질을 하던 사도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실의와 절망에 빠진 어둠의 생활에 머물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집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다고 시편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때만이 불가능하게 보였던 모든 것도 가능하게 되며 어둠의 실의에 빠졌어도 새로운 빛의 희망 속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지친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라고 말씀하시며 희망의 용기를 심어주셨던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들에게 당신의 몸을 성찬의 식탁에서 우리에게 양식으로 내어주시며 희망 속에서 당당히 걸어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이 미사에 참여하며, 특히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을 마음에 모시면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며, 또 주님을 위한 일꾼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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