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11.수
| 루카 복음 24장 13-35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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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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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마오 김유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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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라는 동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같이 걷기를 원하십니다.
이들이 하던 이야기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스승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론은 ‘못 믿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공부를 통해 살아갈 지식을 습득합니다.
습득된 지식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부여하는 의미와 지식이 합해져
실행에 옮겨지고 생각대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배운 지식은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것이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언자의 가르침, 예언서의 말씀, 모세에 관한 기록 등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식은
나의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것이기에 그냥 지식으로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님의 부활을 주위에서 이야기해도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믿지 못한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다가가 부활에 관한 지식과 그 의미를
일치시켜줌으로써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때서야 엠마오로 가던 제자 둘은 눈이 열리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됩니다. 우리도 신앙을
지식으로만 이해하려 하지 말고 삶의 의미를 두고 다가섰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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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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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 서쪽에는 사하라의 중심이라 불리는 한 작은 마을이 있다.
매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사막을 찾는다.
하지만 레빈이라는 사람이 그곳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마을은 전혀 개방되지
않은 낙후된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
레빈은 믿을 수가 없어 손짓발짓으로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사람들의 대답은 모두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결국은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그는 이 말이 사실인지 실험해보기 위해 직접 북쪽을 향해
걸었고, 3일 만에 사막을 빠져나왔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일까? 레빈은 답답한 마음에 이번에는 마을 사람 가운데 청년 한 명을
데리고 청년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10일이 지났다. 밤낮 없이 길을 걸었지만,
11일째 되는 날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레빈은
마침내 그들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북극성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레빈은 지난번 실험에 참가했던 청년을 데리고
다시 함께 길을 떠났다. 그리고 낮에는 충분히 휴식하며 체력을 아꼈다가 밤에
북극성을 따라 걷다보면 사막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청년은 레빈의 말대로 했고, 과연 사흘 만에 사막의 경계지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청년은 훗날 사막의 개척자가 되었고, 개척지 중심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동상 아래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찾음으로써
시작된다.’ 그렇다. 사람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삶의 목표를 정한
그날부터 진정한 인생의 항해가 시작되며, 이전의 날들은 그저 쳇바퀴를
도는 듯한 생활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여정의 길잡이가 될
‘북극성’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삶의 목표가 그런 역할을 한다.
차동엽 | 동이 | <무지개 원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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