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던져주고자 하는 가르침은 이것이다. 빠스카의 쇄신과 변모의 힘을 자신에게 철저히 동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의 길이 그렇게 쉽지 않으며 그 길을 달려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부활에 대한 두 가지 사화를 전해주고 있다. 첫 번째 장면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이른 아침 무덤에 갔다가 목격한 사실을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알리러 즉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고, 두 번째는 두 사도가 일어난 일을 확인하러 무덤에 가고 무덤에서 확인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이 두 사화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다같이 주님의 부활을 믿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진 것을”(1절) 보자마자 즉시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생각했고, 그 소식을 들은 제자들도 같은 염려를 하고 있다. 그들 중 아무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을 때 예수께서 나타나셨지만 그를 동산지기인 줄 알고는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셔요. 내가 모셔가겠습니다”(15절) 하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예수께 대한 애착심이 어떠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죽으시어 무덤에 묻히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렇게 애타게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2절)라고 완곡한 표현으로 나타나는 제자에 관한 것이다. 그 제자는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다다랐으나 들어가지 않고 나중에야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8절). 무덤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에 있어서 베드로를 앞서고 있다. 이것은 요한이 바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바로 그 제자였기 때문에(요한 13,23 참조) ‘사랑의 투시력’(D. Mollat)을 통해 베드로보다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베드로는 신앙의 조건들을 입증해주고 있다. 비록 무덤에 늦게 도착했지만 먼저 무덤에 들어가 수의와 함께 수건이 흩어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예수의 시신이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때에 다른 제자도 무덤에 ‘들어가서 보고 믿는다’(8절).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그들은 신앙의 길을 달려가는 데 있어서 서로 도와주고 있다. 즉 베드로는 보다 밝은 지력을 지니고 있었고, 요한은 보다 열렬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 두 가지 요소, 즉 직관하는 능력과 사랑하는 능력의 종합을 통해 완전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 이 같이 지성과 사랑의 종합은 특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하다. 이 세상이 진정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조로운 신앙고백만이 아니라, 빠스카 사건의 ‘생명을 주는’(1고린 15,45) 힘에 의해 우리 자신을 변모케 함으로써 본질적으로 그 신비에 참여해야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