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이재석 신부-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해마다 자연이 기지개를 펴는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일컬어 ‘삼천리금수강산’이라 부릅니다. 이 아름다운 땅에서 맞이하는 부활 대축일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우리들 마음속에 깊은 의미를 준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는 부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자연적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차례로 변화, 순환합니다. 모든 동식물은 겨울에 죽음과도 같은 휴면에 빠졌다가 이듬해 새롭게 태어나는데, 이렇게 만물이 봄기운을 타고 생동하는 계절에 부활 대축일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봄은 모든 동식물들이 어둡고 추운 겨울, 죽음과도 같은 겨울을 이겨내고 부활을 체험하는 계절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봄이 가치가 있는 것은 겨울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만일 겨울이 없다면 봄은 무의미하고, 우리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부활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이 없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도 주지 못하는 전례행사에 불과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통의 과정이 없는 기쁨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것은 겨울을 보낸 봄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의 동식물이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지만, 그 혹독함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동식물의 휴면의 상태가 아닌 완전한 죽음에서의 새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뿌리에서 잘려져 나뒹굴던 고목의 둥치에서 새순이 돋는 것이며, 동면이 아닌 완전히 숨이 끊어져 싸늘해진 몸에서 다시 숨의 박동이 뛰고 온 몸에서 온기를 뿜어내는 것이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부활을 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부활의 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머리 속에 지식으로 받아들일 뿐 온 몸으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 성서는 우리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신앙 역시 우리들처럼 나약했고, 때로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스승의 뜻을 반대하다가‘사탄’이라는 말까지 듣습니다. 많은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 했던 제자들이었지만, 대사제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스승이 잡혀가고, 수난을 당할 때는 모두 두려워하며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제자들이 오늘 아침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하게 됩니다. ‘빈 무덤’을 보고서야 제자들도 주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이긴 주님의 부활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야말로 겨울을 보낸 봄이 아니라 죽음을 이겨낸 새로운 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이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스승의 부활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현재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2천년 전의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혹은 머리로만 알아듣는 신앙의 상식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아픔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이겨 나가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40여 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활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의 실천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부활 신앙의 실천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새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결단’인 것입니다. 스승의 죽음을 지켜보며 두려움과 허망함으로 좌절감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 가셔서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그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또한 제자들처럼 기쁨에 가득 찬 소리로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때로 신앙의 삶이 세속적인 인간 삶 안에서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인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 나와서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왜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 내왔습니까?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할 때는 비록 힘들어도 고기국물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이집트로 다시 돌아갑시다.”라고 말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이렇게 힘들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에 끝내 도착하고 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거부한다면, 새로운 삶을 살기를 포기한다면 부활 신앙은 헛된 믿음이며, 언제나 세상의 노예, 죄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임을 온 몸으로 믿고 삶 속에서 온 몸으로 증거 할 때 주님으로부터 시작한 부활의 기쁨을 진정으로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