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주님 만찬 성 목요일
2007. 4. 5.
토평동.
탈출 12, 1-8.11-14.
1코린 11, 23-26.
요한 13, 1-15.
오늘은 사제들의 생일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며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것을 행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당신께서 뽑으신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행한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그 거룩한 사제직을 이어받은 사제들은 가당찮게도 그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오묘하고도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저는 과분하게도 생일을 축하한다는 여러분들의 축하인사를 받았습니다. 축하받을 짓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꼽사리로 축하를 받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 거룩함의 초대는 그것을 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먹고 받아 마시되 “이를 행하라”(루카 22, 19)고 하셨습니다. 받아먹기만 하고, 받아 마시기만 하는 신앙의 얌체족이 아니라, 그분께서 행하신 것을 행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제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아먹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아 마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얼마나 내어주었는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을 내어주시고, 발을 씻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 15)
예수께서는 사랑할 줄 모르는 저를 위해 당신께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세족례를 거행하면서 교우들의 발을 씻어줄 때, 내 손길은 얼마나 자상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는지…. 한낱 이 못난이 사제의 손길도 그럴진대 주님의 손길은 어땠겠습니까? 그 주님의 손길을 묵상해봅니다. 그리고 발을 씻어주시던 예수께서 나를 본받으라고 하실 때의 그 마음을 묵상합니다.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너무나 감사하고, 제게 이 사제직을 수행하게 불러주신 것에 너무나 감격해합니다.
너무 못났습니다.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것도 저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주님의 힘을 비는 것이면서도, 마치 제 힘인 양 생색을 내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해라”(요한 13, 15)
너희가 나를 믿는 사람이라면, 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행했으니 너희도 해라.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합니다. 당신께서 먼저 가시니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미사 중에 당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의 힘을 받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성체성사를 전하면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1고린 11, 26)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를 행하라고 명했죠. 우리는 먼저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나를 죽이는 겸손의 모습, 희생의 모습으로 뒤따라야 합니다. 늘 미사를 거행하면서 주님의 이 사랑을 기억하고, 그렇게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만을 바라보며, 영광만을 바라보며, 단물만 쏙쏙 빼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미사를 통한 의무 이행으로 나의 영광을 기대한 채 행할 바를 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단물만을 쏙 빼먹으려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더 큰 사랑의 의무를 지고 있는 저, 그리고 저와 함께 주님의 길을 걸어갈 여러분, 주님만을 바라보며 서로 사랑으로 손잡고 함께 가길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