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빈무덤을 경축하는가[박상대신부님] 2007.04.08 09

2007. 4. 9. 오후 1:48:23

글자

빈무덤을 경축하는가?

 -박상대신부-


 

  어제 성금요일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전례를 통하여 우리는 어떠한 욕설과 조롱도, 침 뱉음과 모욕적인 발언도, 무자비한 채찍질과 구타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도, 나아가 인간 최대의 부정적인 체험인 사형선고와 그로 인한 죽음도 예수님의 인간적이고 하느님적인 사랑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보았다. 하느님 사랑은 이렇게 죽음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자기에게 모든 불리한 것을 참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인간 예수님은 고개를 떨구며 숨을 거두셨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 공관복음이 공통적으로 보도하는 바에 따르면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으며(마태 27,51; 마르 15,38; 루가 23,44),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던 백인대장과 사람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태 27,54; 마르 15,38; 루가 23,47) 하고 고백하였다. 마태오는 그 순간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옛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하고 있다.(마태 27,51-53)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온 사건들이다. 사태는 분명히 돌변했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그분이 원래 지니고 계셨던 신성(神性)이 그 모습을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세계의 역사에는 또 다른 하느님의 자기계시가 시작되었다. 예수의 죽음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드러난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승리의 사건이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누리지 못할 최대의 승리이다. 이는 죄에 대한 승리요, 죄로 말미암은 죽음에 대한 승리로서 곧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다.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었고,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온갖 분노와 모욕을 불러일으킨 일이었지만(1 고린 1,23), 예수님의 공생활 중 모든 가르침과 행동의 마지막 책임 있는 결론이 십자가상 죽음이라면, 오늘 우리가 자랑스럽게 믿고, 경축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이 모든 것이 참되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사건이다. 그분이 일찍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영원히 살 것"(요한 11,25)이라는 말씀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는 말씀에 대한 확증이다. 따라서 그분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과 희망이 죽음으로 끝나거나 죽음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자에 있다는 사실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란 거짓에 뿌리를 둘 수 없다. 참된 믿음은 변할 수 없는 ’진리’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분 삶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그분 자체가 진리임을 증명해 주신 것이다. 진리는 불멸한다. 죽을 수 없다. 만약 죽더라도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느님께도 예수님께도 죽음은 없다. 그분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편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우리 인간들 편에서 진리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에 관한 믿음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일단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들은 루가복음에서도 부활을 목격했다는 보도는 아무 데도 없다. 이는 모든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확실한 것 두 가지는 안식일 이른 아침에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빈무덤만을 보았다 것과 (두) 젊은이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결국 빈무덤과 메시지를 가지고 우리는 예수부활의 믿음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예수부활에 관한 믿음은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어야하는 도전이다. 이 도전이 비단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만 갑자기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첫날 아침부터 그랬다.

 

  부활의 믿음에 대한 도전의 실마리는 빈무덤과 젊은이의 메시지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전에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무어라고 말씀하셨느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지 않았느냐?"(5-7절)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곧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죽은 자 가운데 있을 수 없으므로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이며, 갈릴래아 활동시절에 세 번에 걸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 복음에서 빈무덤을 최초로 목격한 여인들이 바로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줄곧 따라 다녔던 여인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루가 23,49) 오늘 루가복음의 내용을 미루어 볼 때 이 여인들은 예수님 부활의 최초 증인들이다. 이 여인들은 갈릴래아 시절부터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다. 안식일 이른 새벽에 급하게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갔던 이유도 ’명절 준비일’과 ’안식일 시작’ 때문에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함께 경황없이 치렀던 예수님의 장례(루가 23,50-56)를 송구스럽게 생각하여 보완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그 이상을 그분과 함께 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여인들에게 부활신앙의 은총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들 또한 부활신앙이 갈릴래아와 빈무덤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애독자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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