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을 교회에서는 “성주간”이라 부르며 일 년 중 어느 주간보다도 더 거룩하게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주간은 예수께서 비천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시작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월요일,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화요일, 유다의 실제적인 배반과 최후의 만찬을 준비시켜 그 만찬에 임하시는 수요일,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친히 제자의 발을 씻겨 사랑의 본보기를 주시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 섞인 마지막 기도를 아버지께 바치신 성목요일,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체포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결국에는 사형선고를 받고 갖은 수모와 조롱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는 성금요일, 살아 계실 적에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안식의 무덤에 묻히시는 성토요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주간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의 사랑이, 그분의 구원업적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주간인 것입니다.
성주간의 이러한 의미는 오늘 주님수난성지주일의 모든 전례 독서에 잘 담겨져 있는데, 오늘 성지주일의 전례는 제1부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과 제2부 수난복음을 중심으로 한 미사로 구성됩니다. 특히 제2부 미사에서 봉독되는 야훼의 종의 셋째노래를 담은 제1독서(이사 50,4-7)와 바울로 사도가 펼치는 그리스도론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강생신비와 찬가를 담은 제2독서(필립 2,6-11)는 성주간의 의미를 마음껏 표현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수난복음(루카 22,14-23,56)에서는 성주간의 절정을 이루는 성삼일 전례의 만찬, 수난과 죽음, 묻히심의 사건을 미리 앞당겨 기념합니다.
오늘 우리는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모두의 손에 성지가지를 들고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듯, 같은 심정으로 주님을 찬미하며 미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왕의 행차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을 하러 나가는 왕은 완전무장을 한 왕에 재빠른 말을 타고 나가고 있었으며, 이웃 마을의 방문이나 친교의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에는 왕의 평상복에 온순하며 느린 나귀를 타고 나갔던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왕의 모습 중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는 것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즈카리야 예언자는 마지막 날 메시야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기에,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아의 모습을 그려보았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백성들은 예수님의 가는 길에 자신들의 옷을 벗어 길을 만들고 손에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환호하며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마치 일제의 침략에서 해방을 맞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함께 자유의 세계를 꿈꾸며 만세를 부르며 모여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는 육이오로 뺏겼던 땅을 되찾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미군이나 국군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라고 만세를 외치며 주님을 맞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 가지는 일 년 동안 집안 십자가에 걸어 내년도 재의 수요일까지 보관할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과연 우리들이 오늘 받은 성지가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의 성지가지는 바로 우리들의 신앙의 표징이요 증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지가지는 바로 우리들의 신앙의 표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들이 기다리던 왕으로, 메시아로 고백하는 표징이며, 그토록 기다리던 승리의 환호였듯이, 오늘 우리의 성지가지도 우리들의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왕으로, 우리를 구원하며 영원한 생명으로 주실 분으로 고백하는 표징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지가지를 들고 환호했던 “호산나”의 소리는 바로 나는 주님을 통해서 나의 모든 것을 완성하며, 그분을 위해서 나의 삶을 살 것이며, 모든 보상을 그분에게서만 받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또한 오늘의 성지가지는 바로 우리들의 신앙을 지켜보고 책직질을 하는 증인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매일 십자가와 함께 걸려있을 이 성지가지는 바로 우리들이 고백한 신앙의 내용에 대해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십자가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를 통해서 또한 주님의 영광은 바로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도 함께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약하고 변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오늘 미사 때에 읽은 수난복음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몇 일전에 예수님을 왕으로 받들고 환호를 질렀던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것처럼, 흔들림 없이 항구하게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우리들의 신앙도 때때로 약해지고 변하게 될 경우도 많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약해질 때, 변할 때, 오늘 받은 성지가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가지를 들고 외쳤던 “호산나”를 기억해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신앙을 굳게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은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부활절을 기쁜 마음으로, 아니 바로 우리가 신앙인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죽음을 맛보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이기적인 욕심에서 죽고 새롭게 이웃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남은 성주간을 잘 준비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비록 바쁜 일정이지만, 성주간의 예절에 참여하며 우리들이 오늘 주님께 고백한 신앙의 고백이 단순히 우리가 입으로만 외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신앙인의 마음에서 울어난 것임을 확인하도록 노력합시다. 이번 부활은 주님의 무덤을 통해 우리들이 변화된 몸과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
주님 당신과 함께 제 자신에 대해 죽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위해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물 빛 (1) - 마 종 기 -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다 준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여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
4월 2일 월요일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민병섭 신부님
2007. 4. 3. 오후 10: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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