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2.월
| 요한 복음 12장 1-1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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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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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봅시다 김유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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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시각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눈과 또 하나는 마음으로부터 보는 눈이라고 합니다. 시각을 통해 사물을 볼 때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책이구나, 저것은 자전거구나’ 하고 구분할 뿐입니다. 이러한 단계가 끝나면 마음의 눈이 작동을 합니다. ‘책은 싫어! 머리 아파, 자전거 타기는 좋아해! 마을 밖 공터에서 신나게 달려야지.’ 이어서 행동이 나타납니다. 책을 뒤로 하고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것이지요. 이를 누군가가 막으면 평화는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에서 다시 살린 라자로와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라는 것을 알리는 사건으로 이분이 바로 구약에서부터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명백히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석사제들과 그 무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고 급기야는 살인을 통해 그분의 업적을 지우려 합니다. 욕심과 미움으로 물든 마음의 눈이 악을 행하도록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살인은 십계명을 어기는 큰 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죽이기로 결의를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마음의 눈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 완전한 방법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참으로 열심히 믿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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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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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 있기에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 마음이 있기는 있는 걸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잖은가. 때로 어떤 무언가로 가슴앓이를 할 때, 가슴 한가운데가 찌르듯 아픈 걸 보면 분명 마음은, 여기 가슴뼈 있는 부분에 있는 것도 같은데…. 마음이 무엇이건대, 그 마음이 무얼 안다고 어떤 것들은 물 흐르듯 흘려버리고 또 어떤 것들은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은 분명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상큼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쌉싸래하고 달콤한 사랑처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요술 돋보기 같은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의 자루는 어떤 크기만 할까?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들이 한가득 담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만할까? 아니, 어쩌면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그 빵과 물고기가 담긴 광주리만할까? 예쁘디 예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을 볼 때면 그보다 더 풍요로울 것 같은 감동에 잠기기에. 아무리 따뜻한 말을 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리 퉁명스레 말을 해도 따뜻하게 스며 올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진심을 건네받았던 감동의 순간들은, 그때의 주변 풍경들까지 기억에 박혀 떠올리면 아름다운 사진처럼 일생을 기억하며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있는 것이 사랑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신통하게도 그 마음은 다 드러나기 마련이니 보이지 않지만, 만질 수 없지만 정말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권양희 |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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