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성주간 월요일-요한 12,1-11 이제 곧 떠나가실 주님위해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할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언젠가 오랫동안 정들었던 임지를 떠나오면서 송별식 차원에서 한 가족으로부터 저녁식사를 초대받아 간적이 있었습니다. 거실로 들어선 저는 ‘짝’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지지고, 볶고, 삶고, 다지고, 그것도 부족해서 배달시키고, 그야말로 상다리가 휠 정도였습니다. 별것도 아닌 저를 위해 이렇게 신경 쓰시다니, 하는 마음에 송구스럽기만 했습니다. 간단하게, 그리고 속전속결로 식사를 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산해진미 앞에 괜히 화가 났습니다. 엉뚱한 곳에 낭비를 엄청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 ‘쓴 소리’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 집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분들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이제 먼 곳으로 떠나가기에, 앞으로는 자주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기에, 그 아쉽고 섭섭한 마음의 표현이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수성찬’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파티의 무대는 베타니아 한 가정이었습니다. 파티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외양상, 명목상 이 파티의 목적은 저승까지 건너갔었던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께 감사와 답례를 드리는 차원에서의 감사였습니다. 그러나 좀 더 묵상해보면 이 파티는 이제 먼 길 떠나가실 예수님을 위한 이별파티, 혹은 송별식이라고도 이름붙일 수 있습니다. 파티 중간에 깜짝 놀랄 작은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라자로의 여동생인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한 깜짝 이벤트 하나를 준비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롱 깊숙이 고이고이 간직해두었던 순 나르드 향유를 한 리트라(약 한 근, 300그람 정도, 이는 당시 가격으로 환산하면 300데나리온, 당시 노동자 10달치 월급에 상당하는 가치를 지님)를 들고 예수님 앞에 섰습니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향유의 상표를 보고 저마다 마음속으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야, 정말 제대로 된 향유로군. 그런데 저 비싼 걸 어쩌려고 그러지? 아마도 감사의 선물로 드리려고 하는가보지.’ 그러나 웬걸, 마리아는 그 비싼 향유 병의 뚜껑을 열고는 적당히 발라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정없이 예수님 발에 부어버렸습니다. 그 순간 나르드 특유의 향기가 잔칫집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의 돌출 행동 앞에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발에 발라드리기에는 한 두 방울로도 충분할 텐데, 저 비싼 걸 다 부어버리다니…’ 다들 아까워했습니다. 특히 유다 이스카리옷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저런, 저런, 저 여자가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황사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향유 가게에 갖다 팔면 삼백 데나리온도 도 받을 텐데…” 제자 공동체의 공금을 수시로 횡령하고 유용해왔던 유다였기에 삼백 데나리온이란 큰돈을 벌 기회를 놓쳤음에 터져 나온 아쉬움의 탄식이었습니다. 거금을 눈앞에서 날려버린 유다의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리아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풀어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이런 마리아의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의 심기는 더욱 불편했겠지요. ‘보자보자 하니 점점 가관이네. 살다 살다 별 생쇼를 다 보네. 차라리 영화를 찍어라. 영화를!’ 마리아의 기름부음은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장례의식이었습니다. 이제 곧 십자가형에 처해지실 예수님, 그러나 분위기 상 제대로 치러지지 못할 장례식이기에 마르타는 미리 앞당겨 예수님께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치러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봉헌을 통해 장례식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지상 최대의 가치를 부여했기에 자신의 전 재산일 것이 분명한 삼백 데나리온 짜리 향유 한통 전부를 남김없이 예수님 발에 부어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반면 유다에게 있어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는 한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다는 예수님을 삼백 데나리온 짜리 향유보다 훨씬 낮게 가치평가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닥에 흘려버린 향유가 그렇게 아까웠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아무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정녕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라면 몇 시간, 몇 날 며칠을 허송세월한다 해도 손해 본다는 느낌을 갖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결국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부어진 삼백 데나리온 어치나 되는 값진 향유가 유다에게는 그렇게 아까웠고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마리아에게는 그 일처럼 기쁜 일이 세상에 다시 또 없었습니다. 그 일을 마친 마리아는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풍성한 자비가 일 년 중 가장 풍요롭게 흘러넘치는 성주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지닌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떠나가실 예수님께 그 가장 가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기쁜 마음, 행복한 얼굴로 봉헌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 |
2007.04.02 /[강론] New / 이제 곧 떠나가실 주님위해 l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2007. 4. 3. 오후 1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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