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돈 수녀(대구 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
예수님이 베다니아에서 라자로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실 때 마리아가 값진 나르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발라드렸다. 값진 향유를 머리도 아닌 발에 바른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었을 뿐 아니라 큰 낭비요, 무익한 일이었다. 유다는 그 향유가 적어도 300데나리온은 될 것이라고 재빨리 계산을 하면서 마리아의 행동을 불만스러워한다. 300데나리온은 품팔이꾼이 일년 동안 버는 돈보다 더 많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진정 가난한 이들을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남이 사랑으로 하는 행동을 좋은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을까? 그것은 질투와 탐욕으로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온 집안이 향기로 가득찼다.” 하느님의 실존을 체험할 때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볼 수 있다. 하느님의 발자취는 사람의 영혼 안에 좋은 향기, 신선한 맛, 달콤함과 기쁨을 안겨준다. 마치 가나 혼인잔치의 향긋한 술맛처럼!
향유를 바름은 사랑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발에 향유를 바르는 것은 아주 친근한 사이, 곧 아내나 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질투와 탐욕으로 눈이 어두운 유다가 어떻게 낭비하는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바친 그분 사랑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죽도록 사랑한 분을 향한 여인의 애절한 사랑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십자가의 죽음은 사랑의 완성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은 낭비하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만이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그분의 사랑이 내 안에 흘러 넘칠 때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