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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주간 월 요한 12, 1-11- 우리도 사진이나 찍으러 갈까요?
작년에 첫 부임지였던 광양 성당에 혼배미사가 있어서 주임신부님이셨던 임문철 신부님과 함께 갔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갔는데, 방에 성산포 일출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막 찍은 사진은 아니었고, 새들과 구름, 햇볕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일출봉에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양영수 신부님께서 사진을 보면서 ‘사진 참 잘 찍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그런 날에 찍은 사진 같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참 고생 많이 했을 것이다.’며 극찬을 하셨습니다. 옆에 계시던 임신부님께서도 ‘그래, 참 사진 잘 나왔다. 이사진 가격이 100만원을 훨씬 넘을걸...’ 라고 말씀하시며 양 신부님의 말씀에 동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예! 저 사진이 100만원이 넘는다고요? 방 신부님, 우리 사진 찍으러 갑시다. 막 찍다가 한방 대박 터드리면, 100만원이라고 하잖아요.’ 라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저의 농담에 임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 양 신부, 보좌에게 용돈을 많이 줘야겠다. 우리가 얼마나 인색했으면, 이런 자리에서 돈 이야기를 하냐?’는 말씀을 하셔서,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저에게 있어 일출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별 느낌이 없습니다. 예술적 가치니, 사진작가의 인내와 고통이 담긴 소중한 작품이니 그런 것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표선면 옆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김영갑이라는 분이, 우연하게 제주에 왔다가 오름에 매료되어, 20년 가까이 제주의 모든 오름을 걸어 다니며, 오름을 아름답고, 멋있게 찍었습니다. 간첩으로 오해 받아 경찰서에도 여러 번 다녀오셨답니다. 그렇게 인내와 고통, 온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작품들을 한 분교에 갤러리를 열고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의 삶이 송두리째 담긴 작품이어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그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는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꼭 가보고 싶은 곳1위로, 김영갑 갤러리가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다. 언젠가 동기신부가 왔을 때, 한 번 찾아가 보았는데, 솔직히 차를 몰고 돌아올 때, 저의 마음은 ‘괜히 갔다. 시간과 돈만 낭비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문득, 강론을 준비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당에 걸려있던 사진을 볼 때나, 김영갑 갤러리를 찾아갔을 때에, 작품을 순수하게 예술적 가치, 그 자체로 본 것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로 보았구나..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작품성을 놓고 ‘좋다. 나쁘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비싸다. 싸다.’는 것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두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순수하게 작품으로 대하지 못하고 경제적 가치로만 여기니,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간 미술 성적이 밑바닥인 것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복음에 저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그때, 그 장면을 본 유다가 한 마디 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이러한 유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비싼 향유를 헛되게 발을 씻는 일에 쓰느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 더 좋고 맞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러한 유다의 말이 순수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곧, 유다가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유다가 이렇게 말을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주어도, 주어도 늘 모자라기만 한 그 마음을... 자신의 모든 것을 헛되이 낭비해 버려도 아깝지 않는 그 사랑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려는 마리아의 순수하고 지극한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유다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참된 사랑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향유 옥합의 가치를 사랑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로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리아의 행동이 어리석은 일로만 여기는 것이요, 비싼 향유를 헛되게 낭비한다며 비난하는 것입니다.
지역 안에서 많은 활동과 봉사와 선행을 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보이고, 그럼으로써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선행과 봉사 안에서 경제적 가치를 따지며 행할 때도 있습니다. ‘남들도 안하는데 왜 나만 이런 일을 하며 손해를 보아야 하나?’ 라는 생각에 하려는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하는 모든 선행과 봉사, 사랑의 실천을 경제적 가치로만 보지 말고 순수하게 사랑의 표현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하느님께 받은 많은 사랑과 축복을 다시 봉헌한다는 마음으로 행하면 어떨까요? 하느님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한 그만큼 마음 한 가운데서 깊은 감동과 평화가 밀려올 것입니다. 현세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풍부하고 심오한 영적인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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