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열심히 물장구를 칩시다[류해욱신부님]

2007. 3. 30. 오후 10:40:44

글자

열심히 물장구를 칩시다.


  저는 매일 아침 어느 발달장애 아이를 가진 어머니들의 모임에서 만든 한 카페의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답니다. 거기 어머니들이 나눈 글들이 진솔하고 꾸밈없어 저에게 작지 않은 기쁨을 주기 때문이지요. 어떤 어머니가 이런 글을 올렸어요.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 사회악이 있답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랍니다. 이것은 인도의 성자 간디 무덤 앞 석비에 새겨진 문구이기도 하답니다. 이 어머니는 일곱 가지 모두가 매일 매스컴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아직 멸망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제 생각엔 우리나라의 수호신이 짱짱하거나, 아니면 거의 다 망해가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도록 수많은 발들이 겁나게 열심히 물장구를 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라고 썼어요. 재미있으면서도 정직하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민초들의 삶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위에 언급한 일곱 가지 사회악,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면, 제가 현실에 대해 너무 비관적일까요? 저는 종교인으로서 마지막 사회악인 ‘희생 없는 종교’가 가시로 찌르듯 눈을 아프게 하네요. 이스라엘이 멸망을 앞두고 있을 때,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외쳤던 예언자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과연 오늘날 우리 시대의 종교인들은 무슨 희생을 하고 있는가? 진정 이 시대에 예언자는 없는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 가득합니다.


  일곱 가지 사회악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영혼과 순수, 그리고 사랑을 잃어버린 사회’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 매스컴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이런 현실들에서 벗어나 영혼과 순수, 그리고 사랑이 있는 환상의 도시를 찾아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현대의 예언자 칼릴 지브란은 ‘환상의 도시’로 가는 비행기표가 들어 있는 초대장을 내밉니다.

  ‘환상의 도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인간이 본래 누구인가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칼릴 지브란의 시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눈물과 미소


                                               칼릴 지브란

                                               류해욱 옮김



내 가슴속 깊은 슬픔을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바꾸지 않으리라.

온 몸에 흐르는 슬픔이 금세 웃음으로 바뀌는 눈물이라면

나는 그런 눈물은 흘리지 않으리라.

눈물과 미소가 내 삶이기를.


눈물은 내 마음을 씻어주고 생의 비밀과 감추어진 것들을 알려 주네.

미소는 나를 후손들에게 이끌어 주어 신들에게 바치는 찬미의 상징이 되네.

눈물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하나가 되게 하고 

미소는 존재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표징이 되어 주네.


지루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기보다 열망과 동경 속에서 죽기를 바라네.

내 영혼 깊은 곳에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기를.

만족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라네.

열망과 동경을 가진 이들의 탄식소리를 들었네.

부드러운 선율보다도 더 달콤하네.


저녁이 되면 꽃들은 그리움을 품은 꽃잎을 접고 잠드네.

아침이 밝아오면 꽃들은 입술을 열고 태양과 입맞춤 하네.

한 송이 꽃에도 아픈 그리움과 성취가 들어있다네.

눈물과 미소가.


바다의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에 올라 함께 모여 구름이 되네.

구름이 언덕과 계곡을 떠다니다 부드러운 바람을 만나면

비가 되어 들판을 적시고 시냇물로 흘러 강물과 만나서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네. 

구름의 생이란 헤어짐과 만남.

그리고 눈물과 미소.


이렇듯 영혼은 더 위대한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물질의 세계로 들어가서

구름처럼 슬픔의 산과 기쁨의 평원을 떠돌다가

죽음의 미풍과 만나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네.

사랑과 아름다움의 바다 ― 하느님에게로. 



  칼릴 지브란의 시는 기도이기도 하지요. 고요 안에서 기도에 침잠하듯 그의 시에 깊이 머물면 다시 우리에게 영혼, 순수, 그리고 사랑을 찾아주는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제가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 나름대로 옮겨 보았지요. “그대가 사랑을 할 때, ‘하느님이 그대 안에 계신다.’고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 안에 그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눈물과 미소’를 번역하면서 정현종 교수의 칼릴 지브란에 대한 비평에 공감했지요.

  “시인 자신의 삶과 영혼이 상처 입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그리고 인간의 고통스러운 실존적 조건들에 민감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그의 노래들은, 따라서 인간의 삶의 상처와 조건들에 민감한 영혼들을 파고드는 힘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 가슴속 깊은 슬픔을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바꾸지 않으리라”는 시인의 말은 언뜻 오만으로 들릴 수도 있지요. 그러나 온 몸에 흐르는 슬픔이 웃음으로 바뀌기를 원치 않고, 눈물과 미소가 함께 자기의 삶이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그가 얼마나 고통을 겪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지녔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더 큰 갈망이 없이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비참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열망과 동경을 지닌 사람들이 쏟아내는 고뇌의 한숨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보다도 더 감미롭다고 하니, 그는 분명 우리 인간 삶의 고뇌 속에 담겨 있는 진실을 체험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탁월한 화가이기도 했던 지브란은 “나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꿈꾸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는 시와 그림 안에 영혼, 순수, 그리고 사랑을 담고 영원을 향한 열정을 살았기에 ‘영혼의 시인’이라고 불리나 봅니다. 저는 지브란이 전시회를 했을 때, <아메리칸>에 실렸다는 비평을 읽고 그의 그림이 궁금해졌습니다. (사진으로가 아닌 진품을 보고 싶은 것이지요.)

  “그의 작품은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신비 앞에서 인간의 영혼이 자의식의 고독에 눈뜨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열심히 발로 물장구를 치고 있는 민초들의 삶이 결국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도 열심히 물장구를 치기로 해요. 물장구는 바로 영혼, 순수, 사랑을 향한 열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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