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복음 8장 51-59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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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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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허찬란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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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요한 복음은 선재(先在)사상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어 오셨지만 이미 그전부터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액면 그대로 쉰 살도 안 된 사람이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냐고 따집니다. 예수님의 말을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진 채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이에 대해 믿음은 반드시 필요한 신앙의 요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묵상과 성찰을 하다보면 그분을 알고 있는 내가 얼마나 고귀한 분을 알고 있는지, 그분에게서 얼마나 많은 은총을 받고 사는지를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처음부터 계셨듯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늘 나라를 지금 여기서부터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비록 복음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 나라를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이 가르쳐주고 인도해주시는 삶을 믿고 따르면 행복은 절로 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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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깃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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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두통은 많은 경우 자기 능력 밖의 일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자신의 욕망을 부추기며 때론 혹사시킬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내가 요즘 내 자신을 과대평가한 업보로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의 통증으로 새벽에 깨어났다. 4시 32분. 나는 겨우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머릿속에 들어가서 쉴 새 없이 뒷통수를 쪼아대고 있다고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언젠가 주워들은 대로 뜨거운 물에 발을 좀 담가볼 심산으로 욕실에 갔지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정수기에서 온수를 받아다 대야에 붓고는 욕조 모퉁이에 걸터앉아 따뜻한 물에 두 발을 담갔다. 아직 새벽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수사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욕실의 불을 껐다. 생각보다 욕실 안은 훨씬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따금 어디에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싫지 않게 들려왔다. 나는 두통이 사라질 때까지 재미난 상상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가 가장 행복해할 ‘위치’가 어디인지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가 생각났다. 명예와 뭇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상상이 주를 이루었음을 고백한다. 어느덧 나의 두 발이 담겨 있는 대야의 물이 서늘하게 식어 있을 즈음, 나는 놀랍게도 내가 가장 행복해할 ‘위치’는 바로 저 따뜻한 물에 20분 발을 담그고 있을 때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방에 돌아온 나는 다시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기 전에 방금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간 여운을 떠올렸다. 행복을 진행형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끝끝내 불행해지고 만다는 욕실의 교훈이 녹록치 않은 까닭이다. 삶에 깃들이기 위하여 나는 불필요한 미래 완료형의 달콤한 게으름으로부터 나의 행복을 이만큼 앞당기기로 했다. 김상용 | 성서와함께 | <외로움의 폭넓은 지류를 건너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