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꼬부라진 개구리
개구리 한 마리가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주워듣고 몇 마디 배운 영어를
자랑하고 싶은 개구리가 밭으로 나갔다가 소를 만났습니다.
“소야, 소야, 너는 뭐 먹고 사니?”
소가 대답했습니다.
“나야 풀을 뜯어먹고 살지.”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오우, 샐러드!”
이번에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아, 호랑아, 너는 뭐 먹고 사니?”
“나는 고기를 먹고 살지.”
“아, 스테이크!”
조금 가다가 뱀을 만났습니다.
“뱀아, 뱀아, 너는 뭐 먹고 사니?”
뱀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처럼 혀 꼬부라진 개구리를 먹고 살지.”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아따, 행님도, 우짜 그러신다요? 지는 영어 못하는디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말씀 안에 머무르면 당신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지요. 우리도 때로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라고 노래합니다. 예수님이 진리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오늘 제가 드린 수녀원 미사 때 입당 성가가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라는 가사의 성가였습니다. 가장 잔혹한 사형도구인 십자가가 무한 영광이라는 사실이 진리라면 참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다. 진리란 십자가를 통해서만 부활의 영광으로 나아갈 수 있고, 예수님도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 삶에서 때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없이 참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 우리 삶에 미소뿐만 아니라 눈물이 있고, 그 눈물을 통해 우리 삶이 정화된다는 사실이 진리가 아닐까요? 그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롭게 되겠지요. 물질이나 명예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물질에서, 명예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
오늘 독서에서는 유다의 용감한 세 청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가 왕이 금 신상을 만들어 그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활활 타는 불 화덕에 집어넣을 것이라고 위협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구원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불 화덕으로 던져집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불가마와 왕의 손에서 자기들을 구해 내실 것이라는 신뢰를 지니고 불 화덕에 들어갈 수 있는 자유야말로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예수님 말씀의 구체적인 예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쯤 왜 제가 혀 꼬부라진 개구리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했을까, 오늘 말씀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열심히 생각하고 계시지요? 말씀들과 연결이 되면 진리를 깨닫는 경지에 이르신 것이고요. 저는 그냥 웃으시라고 한 유머입니다. 요즈음처럼 각박해진 우리 삶에서 유머가 절실하다는 사실도 진리일테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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