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시는 예수님
-광주대교구 이재회 신부-
어느 방송에 ‘내 인생의 사과나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인기 연예인이나 특정 전문가들의 삶이나 인생철학 등을 이야기하며 지금 성공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거칩니다. 상처받고 쓰러지고 넘어져 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 것들을 소개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일 수 있고, 그림, 음악, 책,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도 사과나무 한 그루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과나무는 내 자신이 미울 정도로 죄중에 허덕일 때라도 질타나 문책의 소리가 아닌 오히려 격려와 용기를 주고 자비를 베푸는 용서의 말을 통해서 자라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의 의도는 무척이나 간교합니다. 예수님께서 모세법(레위20,10 ; 신명 22,22)에 따라 이 여인을 심판해 줄 것을 요구하는 그들의 주장대로 하신다면 예수님 자신이 지금까지 베풀어 온 자비와 용서를 스스로 거부하는 셈이 됩니다.
이에 반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판결을 거절한다면 율법을 위반했다는 구실로 예수님을 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수용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으시면서 판단의 방향을 근본적인 자기 성찰로 돌리십니다.
예수님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대결은 복음과 율법의 대결로도 견줄 수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지만 서로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얼핏 예리한 비판 정신을 갖고 있지만 비판의 대상에서 자기가 제외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관용과 부드러움이 결여되어 남을 단죄하고 끝내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용서와 사랑으로 공생과 화해의 관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단죄하기보다는 용서하심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그 힘으로 희망찬 미래로 전진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도 가슴에 품고 살아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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