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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 3 주간 토요일 2007. 3. 17. 토평동.
호세 6, 1-6. 루카 18, 9-14.
신앙의 삶을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들,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그들은 주님께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바리사이인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그 이상으로 하느님께 충성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칫 성경 속에서 말하는 바리사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질타를 보고 바리사이들을 송두리째 비하할 수 있으나 그들 전체가 욕먹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보다 하느님에 대한 열성이 깊었던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바리사이들에게 그토록 가혹하리만치 질타를 하셨을까?(물론 이것은 예수님에게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초기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바리사이 간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기는 하다) 그것은 그들 전체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말은 그럴싸하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행하지 않거나 혹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면서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루카 18, 9)에 대해서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 이름 속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이들과 구분된 삶을 살고 싶던 바리사이들의 진심은 신앙적으로 더 열심히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수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바리사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지게 되면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구별지어며 울타리를 치는 부류도 생기게 되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예로 들고 계시는 것은 바리사이이든 세리이든, 그가 어느 직업, 어느 부류에 속해 있느냐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지금 기도를 하는데 어떤 자세로 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예로 드시는 바리사이. 그는 자세부터 꼿꼿합니다. 주님께 기도를 하면서도 그는 마치 자신이 윗사람인 듯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그가 혼잣말로 기도한다는 것이죠. 주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혼자서 중얼거리듯 자화자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오, 하느님,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 11)라고 하고는 있지만, 그는 실상 혼자인 것처럼 자신의 칭찬만을 나열하며 기도를 끝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제이든, 수도자든, 혹은 평신도이든, 기도를 하면서 마치 하느님께 훈계하는 듯한 말투로 기도하는 이들을 봅니다. 주님께서 앞에 계시는 현존의 마음이 아니라 단지 특유의 억양으로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이들을 봅니다.(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님께 기도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찌 기도하는데 잘하고 못하고를 이야기 할 수 있으랴. 단지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그분 앞에서 그분께 기도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혼잣말처럼 이런저런 기도를 끝내고 그들만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모임이나 기도. 과연 이 바리사이의 기도와 뭐가 다를까?
이 사람은 분명 보여지는 모습에서 잘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잘 살아온 모습이 더더욱 겸손함으로 초대를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내가 잘 했다는 마음에 꼿꼿하고, 주님이 아니라 ‘나’가 주인이며, 나의 행위가 나를 낮아지게 하지 못하고 주님 앞에서마저 높아지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다릅니다. 어쩌면 기도를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여겨지지만, 그는 진심으로 낮은 사람입니다. 그는 감히 주님 앞에 나서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못 냈습니다.” “가슴을 치며 말했습니다.” 자신을 죄인이라 하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 기도했습니다.(루카 18, 13) 이것이 기도의 자세입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현대인들이 보기에 비굴해 보인다구요? 아니 참 주인이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인데, 저절로 낮추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앞에 누가 당당합니까? 그분의 사랑을 받아서 당당한 것이지, 그분께 간구하고 청하는 이가 어찌 꼿꼿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란 한없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말로만 감사하면서 정작 자신을 자랑하는 기도는 혼자만의 기도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사이가 의롭지 못하고 세리가 의롭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겸손이 없고 하느님의 현존이 없는 바리사이의 기도는 그를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만들었겠지만, 세리는 다릅니다. 그가 비록 죄 속에 있었어도 진심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겸손되이 기도했다면, 이 기도 후에 그는 달라진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진심어린 기도가 주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는 자가 주님의 그 힘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라도!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루카 18, 14) |
다해 사순 제 3 주간 토요일/누구라도!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 조성호 신부님
2007. 3. 17. 오전 9: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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