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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마술 미국에 심리학자이며 저술가로 유명한 엘리노어 필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심리학 박사가 된 동기를 듣게 되면, 가끔 우리에게 찾아오는 분노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놀라운 힘을 지닌 마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이를 느끼게 됩니다. 그녀의 일화는 브라이언 카바노프 신부가 쓴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이라는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엘리노어 필드는 원래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교실 문이 활짝 열렸답니다. 거기에는 ‘독재자’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교감 선생이 서 있었답니다. 그 여성 독재자는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더니 교실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든 채로 수업을 지켜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찬바람이 이는 겨울이었고, 언제라도 트집을 잡아 시비를 걸 태세였지요. 엘리노어는 마침 학생들과 함께 토마스 하디의 유명한 저서 <난 괜챦아. 너도 괜챦고>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인간의 마음가짐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놓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지켜보고 있던 그 독재자는 엘리노어를 표독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더니 교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답니다. 그녀와 학생들이 ‘이제 독재자가 나가나보다’ 라고 안도의 숨을 쉬려는 순간, 독재자는 다시 엘리노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째려보더니 소리를 쳤습니다. “필드 선생,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은 지금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의 수업을 하고 있는지 보시오. 당신은 자신이 심리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당신은 한낱 평범한 교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시오.” 엘리노어는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답니다. 누구라도 그랬겠지요. 온몸의 세포 구석구석에서 혈압이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눈물이 쏟아지고, 심장은 뛰었지만 학생들 앞이라서 그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주전자 뚜껑을 꼭 내리누를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 독재자가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나가자 학생들이 일제히 자기를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생이 소리쳤답니다. “저 여잔 단단히 혼이 나야 해요.”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답니다. “정말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고요. 오늘 화장실에서 내 지갑을 빼앗더니 담배가 들어 있지 않느냐고 마구 뒤지는 거였어요.” 평소에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남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특히 엘리노어의 감정을 자극했답니다. “저 여자는 우리가 우리들의 문제를 자기와 의논하지 않고 선생님과 함께 의논하니까 질투가 나서 저래요.” 그날 저녁 집까지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여전히 화산이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었고, 위로받지 못한 눈물이 용암처럼 철철 흘러내렸답니다. 그날 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자꾸만 그 독재자가 내뱉은 말이 귓가에서 메아리쳤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심리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명심하시오.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은 심리학자가 아니오. 당신은 한낱 평범한 교사란 말이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밤이 가고 드디어 여명이 밝아왔답니다. 아침햇살이 창문을 비껴올 때 쯤, 한 줄기 빛이 그녀의 머리 속으로 들어왔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답니다. “그래. 내가 심리학자가 되지 못할 이유가 뭐지?” 그녀의 가슴 안에는 분노 대신 열정이 자리 잡았답니다. 그녀는 곧바로 차를 타고 모 대학교에 가서 심리학 박사과정에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인생의 스승은 많은 형태로 다가옵니다. 전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 같지 않은 그런 순간조차 스승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변화를 시도하게 만듭니다.” 그 독재자 교감 선생이야말로 자기를 성공으로 이끈 스승이었답니다. 그녀 안에 일어난 분노의 불길이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선택의 길을 찾도록 연료가 되어 주었고 그 결과 그녀의 정신은 높이 비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그런 큰 변화가 있은 이래로 많은 세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답니다. 그녀의 심리 상담 연구실의 문이 열렸고, 상담 치료를 하기로 예약된 새로운 환자가 걸어 들어왔답니다. 그녀는 찻주전자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지요. “필드 박사님, 전 학교 교사인데요. 오늘 정말 끔찍한 하루였어요. 완전히 독재자인 교장이 있거든요. 그 여자가 학생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절 모욕했어요.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엘리노어 가슴 안에 자비심이 물결쳤지요. 그녀는 말했답니다. “알아요. 당신이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요.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런 독재자 교감 선생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분노를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는 열정으로 바꾸는가, 아니면 그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가는 각 사람이 지닌 역량에 달렸겠지요. 저도 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그런 분노 때문에 나중에는 거의 폐인이 된 사람도 더러 만났지요. 참으로 안타깝지요. 엘리노어는 특별한 자질을 지닌 사람일 겁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들은 분노 대신 열정으로 바꾸기는 참 어렵지요. 저도 전혀 그러지 못하면서 분노를 준 사람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엘리노어가 되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분노에 함몰되지는 말라고 격려를 드리고 싶어요. 저도 얼마 전에 어느 후배 신부 때문에 뚜껑이 열리고 꼭지가 부글부글 끓는 경험을 했지요.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그냥 마치 꾸정물을 뒤집어 쓴 목욕(?)을 당한 것이었지요. 제 안에 여러 가지 항변이 소리치고 있었어요.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후배가 선배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좁은 소인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신부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지.” 등등. 제 안에서 온갖 욕이 나오고 계속해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지요. 저도 그날 잠을 못 잤고,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지요. 자신에게 말했지요. “너는 신부로서 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론했지 않았느냐? 그냥 용서하고 잊어버려라.” 부끄럽게도 강론 대에서 말하기는 쉬운데 막상 제가 당하니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하루가 지나니까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그 후배 신부가 참 불쌍하게 느껴졌지요. 결국 그 후배의 행동이 열등감에서 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분노보다는 연민의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그 후배에게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 두 가지 떠올리고 웃기로 했지요. 여러분들도 이런 일이 있으면, 제가 들려주는 고사 성어를 떠올리고 웃고 넘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엘리노어처럼 분노를 열정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은 그 비법을 저에게 가르쳐 주시고요. 옛날 한나라 때의 일이랍니다. 어느 연못에 예쁜 잉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들어 왔는지 그 연못에 커다란 메기 한 마리가 침입하였고 그 메기는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고 했지요. 잉어는 연못의 이곳저곳으로 메기를 피해 헤엄을 쳤으나 역부족이었고 도망갈 곳이 없어진 잉어는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잉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튀어 오르게 되고, 지느러미를 다리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답니다. 메기가 못 쫓아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잉어가 뛰어간 거리는 약 구리 정도였을까, 암튼 십리가 좀 안 되는 거리였답니다. 그때 잉어가 뛰는 걸 보기 시작한 한 농부가 잉어의 뒤를 따랐고 잉어가 멈추었을 때, 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답니다. “어주구리( 漁走九里 ).”(고기가 9 리를 달리다) 그리고는 힘들어 지친 그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주구리(漁走九里)는 능력도 안 되는 이가 센척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지요. 이 고사 성어를 말 할 때는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로 약간 톤을 높여 말하면 아주 효과적이지요. 아~쭈구리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많으나 잘못된 발음입니다. 화나게 만든 사람에게 속으로 살짝 말해 보세요. “그래. 어주구리, 까불어 봐야 너는 그냥 물고기야. 결국 그러다가 믿었던 농부에게 잡아먹히잖아. 메기가 너를 잡아먹으려고 따라온 것이 아니야. 이 바보야.” 다음의 고사 성어는 발음에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푸시려고 했다가 오히려 봉변을 당해 스트레스가 더 쌓일 수도 있으니까요. 고대 중국의 당나라 때 일이랍니다.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 날, 길을 가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였답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자꾸만 가혹한 채찍질을 가하는 광경을 본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나그네는 말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농부에게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왜 자꾸만 채찍질을 가합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자고로 말이란 가혹하게 부려야 다른 생각을 먹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답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가 없어 이내 자리를 뜬 나그네는 열심히 일하는 말이 불쌍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긴 탄식과 함께 한 마디를 내뱉었다고 합니다. “ 아! 施罰勞馬 ( 시벌로마).” (아, 일하는 말에게 벌을 주는구나.) 훗날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어져 주마가편(走馬加鞭)과 뉘앙스는 약간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施罰勞馬 (시벌로마)는 열심히 일하는 부하직원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직장상사에게 흔히 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아랫사람이 노는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일부 몰상식한 상사나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부려먹는 사장, 또는 늘 닦달을 하는 수도원이나 수녀원 당가나 원장의 뒤에 서서 들릴락 말락 하게 읊어 주면 효과적이랍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발음을 잘 하셔야지, 잘못하면 곤경에 처 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봉변을 당하고서 류해욱 신부가 이 고사숙어를 알려 주었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
[강론] 분노의 마술[류해욱신부님] 2007.03.16
2007. 3. 17. 오전 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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