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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 3 주간 수요일 2007. 3. 14. 토평동.
신명 4, 1.5-9. 마태 5, 17-19.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산상설교의 핵심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연이어 당신의 가르침을 쏟아내는데, 그것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오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마태오는 길게 이어지는 산상설교의 말씀 시작 부분에 이 말씀을 위치시켜 놓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어지는 가르침에서 옛 가르침을 말씀하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것은 자칫 옛것의 폐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옛것의 폐기가 아니라 옛것의 완성입니다. 만약 그것이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구약성경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 17)
완성하러 왔다고 할 때 그 ‘완성하다’는 ‘플레로사이(πληρωσαι)’입니다. 완전케하다는 이 말은 ‘무엇인가를 채우다’, ‘충족시키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구약의 율법이나 예언서의 내용이 채워져야 할 무엇인가로 규정하시고 당신께서 그것을 채우시고 완성하시는 분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기사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 그 가르침을 인간의 언어로 담는다는 것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토라의 그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주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께서는 그들의 염원대로 메시아로 오셔서 그 불완전함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처음은 율법의 가장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유한하게 사라지겠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당신의 창조물은 유한하지만, 그 창조의 원천은 유한하지 않습니다. 한 자 한 획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기에서의 한 자는 점과도 같은 히브리어의 י(요드)를 의미합니다. 가장 작은 글자라도 그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한 자를 없앴다면 하느님의 뜻을 가벼이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한 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말도 받침을 빼느냐 마느냐에 따라, 점 하나를 찍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히브리어도 한 획을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 랍비들의 가르침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런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서 대접받습니다. 우리가 대접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하찮게 여기며 홀짝홀짝 빼먹는 이는 결국 더 큰 일을 벌이게 된다는 것인데, 하느님의 계명 역시 작은 것이라도 아무렇게나 대하는 사람은 큰 계명마저도 소홀히 여기고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는 행위 이전에 마음을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작은 것에 매여 큰 것을 놓쳐서는 안 되죠. 큰 것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말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계명,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나부터 그것을 소중히 하며 먼저 지키고, 다른 이들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
다해 사순 제 3 주간 수요일/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조성호 신부님
2007. 3. 15. 오전 11: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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