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처지가 되는 날 - 허찬란 신부님 /2007.03.01

2007. 3. 1. 오전 8:50:48

글자

삼일절

 

 마태오 복음 7장 7-12절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서로의 처지가 되는 날      허찬란 신부
교구 신부님 가운데 미카엘 신부님이라는 분은 항상 제게 모범적인 사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신부님이 젊은 사제였을 때, 한번은 각 종교간 대화와
만남을 위한 행사 준비 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으셨답니다. 신부님은 당시
외국인 교구장님을 모시고 함께 가셨는데, 모임이 한창 진행될 무렵,
당신의 생각을 피력해야겠다 싶은 순간이 있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더군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한 분 한 분을 보면서, 솔직히 제가 보기에 스님은
스님으로만 보이고, 목사님은 목사님으로만 보이는데 혹시 제가 스님이나
목사님들 눈에 신부가 아닌 여러분과 같은 신분으로 보이는 분이 계십니까?
모임도 좋고 만남도 좋지만 서로가 서로의 처지가 되어준다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이 서로 입장을 바꾸고 서로의 처지가 되어서 서로를 존경하는
날이 올 때 즈음해서야 이 모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줄로 믿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상대방의 입장이 되고 서로의 처지가 되어줘야 한다는 이 말씀을 깊이 공감하며
오늘 복음을 묵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내 동생
나의 둘째 동생은 ‘거미 부인’이라 불린다. 팔 다리는 가느다란데 몸통에
살이 많아 몸매가 거미 같기 때문이다. 옷을 맞춰 입으면 통통한 몸통이
가려지고 가는 팔다리가 돋보여 늘씬해 보이지만 평상복 차림으로 서 있는
뒷모습이란…. 때론 설거지하는 동생 등에다 “엄마!” 하고 부를 때가 있다.
그러다 동생임을 알고는 더 크게 “엄마, 밥 주세요!” 하며 놀리곤 한다.
그런 동생이 살도 빼고 예쁜 몸매를 가꾸겠다며 벨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집에 돌아와도 한밤까지 복습하고 나야 잠이 들고,
그 때문에 식구들은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어느 날인가는 부산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복습을 한다고 옆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
서서 배까지 내놓고 아주 열심이다. 진지한 동생의 얼굴과 출렁이는 살의 어색한
조화로 배시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나는 장난기가 동해 출근 생각도
않고 화장품으로 동생의 배에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배꼽을 입으로 하고
눈, 코를 적당히 그렸다. 동생은 얼굴을 조금 찌푸리더니 이내 더 심하게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동생 배에 그려진 얼굴이 여러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다른 동생들과 배가 아프도록 웃었고, 부모님도 너무 웃으시다 눈물까지
흘리셨다. 동생에겐 예민한 부분이라 어쩌면 내 장난에 화가 났을 법한데, 오히려
웃음을 준 재치와 마음씀이 고마웠다. 몸매가 못마땅하다고 투정을 부리지만
동생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참 사랑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떨쳐버리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정성스레 가꿔가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그날 동생에게 배웠다. 그러고 보니 통통한 내 동생이 참 예뻐보인다.
시간이 지나 그 뱃살이 빠지면 예전의 ‘거미 부인’이 그리울 만큼.
“동생아, 그동안 놀려서 미안해! 근데 밤에 나 잠 좀 자면 안 될까,
내일 출근해야 하거든!”
김인중 |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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