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새로운 광야의 길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은혜로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이 은혜로운 것은 우리가 이 시기 에 보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도 부활의 빛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결코 필요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오늘 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 은 첫 곡식을 하느님께 바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남의 나라 땅에서 노예생활을 했으며 그리고 약속의 땅을 얻기까지에는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수확을 얻게 되니 그 감회가 窄떨?깊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세월 어려웠던 사건들은 모두 다 자신들의 죄의 결과였으며 그때마다 하느님은 벌을 주셨지만 그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해 주시기 위한 그분의 섭리 요 계획이셨습니다. 지내고 보니 하느님의 사랑이 아주 새롭게, 그 리고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래서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은 누구나 광야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몸 붙일 곳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혼자서 고달프게 걸어가며 여러 가지 고난을 두루 체 험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느끼기도 하며 버림과 치욕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느님 사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드뭅니다.
언젠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떤 형제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때 그 형제가 그랬습니다. 아프고 보니 예수님이고 하느님이고 안 보인 다는 것이며 기도하며 선하게 살았던 결과가 고작 그것이냐면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사실 고통을 말할 자 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없다면 신앙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던 바로 그 비슷한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을 하시며 시험을 받으십니다. 성서에서 광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이며 또한 마귀의 유혹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고 예수님 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순절이라는 광야에서 똑같은 것을 체험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특별히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셨던 세 가지 유혹, 즉 빵 과 권력과 공명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욕망에 대해 묵상을 해야 하며 그것들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는 오히려 가지고 있는 그것들을 나누기 위해 우리의 '광야'를 걸어가야 합니다. 사순절은 바로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을 새로운 각도에 서 다시 한번 바라보는 시기입니다.
돈이고 권력이고 채우면 채울수록 부족하게 됩니다. 그것들은 마 치 바닷물과 같아서 배가 가득 차서 터질 지경인데도 "물! 물!"하면 서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나누면 나눌수록 넉넉하게 됩니다. 호 주머니에서 아무리 꺼내어 나누어 줘도 늘 가득 차 있는 넉넉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의 은혜입니다.
성당마다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 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봉사자들을 보 면 그 안에 꼭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고의 영광을 자기들이 얻으려는 공명심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느님과 이웃에게 돌리면 얻는 명예와 은혜가 더 큰데도 그걸 모르고 이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기가 있고 분열이 있습니다.
요즘 가정에서 문제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자녀가 여럿일 때는 형제들이 서로 이해와 양보와 희생이 저절로 뒤따랐습니다. 그래야만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자녀가 하나나 둘이기 때문에 그들이 양보와 희생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고집,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형제들간에 위 아래로 부딪치면서 고통을 배워야 하는데 그 수련이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불화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광야를 체험하고 고난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주일 미사를 봉헌할 때만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에서 내 자신을 이웃에게 내주고 베풀어 줄 때 참다운 신앙고백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사순절은 교회 가 의미있게 걸어가는 광야의 길입니다. 고통을 체험하며 그것을 은혜로 성화시키는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또다시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용기있게 걸어가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결코 필요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은혜로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이 은혜로운 것은 우리가 이 시기 에 보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도 부활의 빛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결코 필요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오늘 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 은 첫 곡식을 하느님께 바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남의 나라 땅에서 노예생활을 했으며 그리고 약속의 땅을 얻기까지에는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수확을 얻게 되니 그 감회가 窄떨?깊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세월 어려웠던 사건들은 모두 다 자신들의 죄의 결과였으며 그때마다 하느님은 벌을 주셨지만 그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해 주시기 위한 그분의 섭리 요 계획이셨습니다. 지내고 보니 하느님의 사랑이 아주 새롭게, 그 리고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래서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은 누구나 광야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몸 붙일 곳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혼자서 고달프게 걸어가며 여러 가지 고난을 두루 체 험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느끼기도 하며 버림과 치욕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느님 사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드뭅니다.
언젠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떤 형제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때 그 형제가 그랬습니다. 아프고 보니 예수님이고 하느님이고 안 보인 다는 것이며 기도하며 선하게 살았던 결과가 고작 그것이냐면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사실 고통을 말할 자 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없다면 신앙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던 바로 그 비슷한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을 하시며 시험을 받으십니다. 성서에서 광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이며 또한 마귀의 유혹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고 예수님 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순절이라는 광야에서 똑같은 것을 체험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특별히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셨던 세 가지 유혹, 즉 빵 과 권력과 공명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욕망에 대해 묵상을 해야 하며 그것들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는 오히려 가지고 있는 그것들을 나누기 위해 우리의 '광야'를 걸어가야 합니다. 사순절은 바로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을 새로운 각도에 서 다시 한번 바라보는 시기입니다.
돈이고 권력이고 채우면 채울수록 부족하게 됩니다. 그것들은 마 치 바닷물과 같아서 배가 가득 차서 터질 지경인데도 "물! 물!"하면 서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나누면 나눌수록 넉넉하게 됩니다. 호 주머니에서 아무리 꺼내어 나누어 줘도 늘 가득 차 있는 넉넉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의 은혜입니다.
성당마다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 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봉사자들을 보 면 그 안에 꼭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고의 영광을 자기들이 얻으려는 공명심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느님과 이웃에게 돌리면 얻는 명예와 은혜가 더 큰데도 그걸 모르고 이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기가 있고 분열이 있습니다.
요즘 가정에서 문제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자녀가 여럿일 때는 형제들이 서로 이해와 양보와 희생이 저절로 뒤따랐습니다. 그래야만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자녀가 하나나 둘이기 때문에 그들이 양보와 희생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고집,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형제들간에 위 아래로 부딪치면서 고통을 배워야 하는데 그 수련이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불화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광야를 체험하고 고난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주일 미사를 봉헌할 때만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에서 내 자신을 이웃에게 내주고 베풀어 줄 때 참다운 신앙고백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사순절은 교회 가 의미있게 걸어가는 광야의 길입니다. 고통을 체험하며 그것을 은혜로 성화시키는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또다시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용기있게 걸어가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결코 필요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