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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중에 사십이 되신 분... 예로부터 사십을 불혹이라 했습니다. 불혹(不惑)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불혹은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된 말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입니다. 40세에 이르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논어’에 언급된 내용입니다.
논어(위정편)에서 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서 나이 40이면 영감소리를 들을 그런 나이인지라 정녕 불혹(不惑)이라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엔 스물 이전에 결혼하여 애도 놓고 나이 40 정도이면 애들이 다 장성하여 손자도 보고 그럴 나이였습니다. 평균수명이 채 60도 안되는 시대였기에 불혹(不惑)에 접어들면 사실 중늙은이 취급을 받던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그 때와는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요즘 나이 40은 공자가 살던 시대처럼 늙은이가 아니고 중년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춘이라고 까지야 말할 수 없겠지만 그 나이에 애를 놓는 부부들도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나이에 결혼도 하는 시대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0.8을 곱하면 예전의 나이가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60이면 옛날의 48세 정도로 보고 요즘 70이면 예전의 56세 정도로 본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40이면 숫자를 생각하면서 40일을 단식하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단식은 단순히 굶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해 모으는 집중의 시기입니다. 그러한 때에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유혹하려는 악마의 태도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면서도 유혹하려 했다면 하물며 한갓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유혹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40일을 마음모아 단식하고 했는데도 그러한 예수님을 유혹을 하는 마귀라면 40년, 불혹의 나이가 되기까지, 아니면 수도 생활 40년을 하면서 하느님을 모시고 충실히 살았다해도 그러한 우리를 유혹하기는 식은 죽 먹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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