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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간 화요일 2007. 2. 13. (창세 6,5-8; 7,1-5.10/ 마르 8,14-21)
예전에 비해 우리나라도 법이 참 많이 발전하고, 많은 법들이 제정되었습니다. 법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법이 발전한다는 말을 뒤집으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꾸만 나쁜 사람으로 되어간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온 역사를 구원의 역사라고 합니다만, 그 말도 뒤집으면 이스라엘 역사는 죄의 역사란 말과 같습니다. 하느님 편에서 역사를 볼 때는 구원역사가 되지만, 인간 편에서 볼 때는 죄의 역사가 됩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동네사람들이 붙잡아 돌로 쳐 죽이기 위해 예수님 앞에 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하셨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요한 8,9)라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을 대면하면서 비로소 자신들이 죄인임을 바로 대면하였을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고, 주님의 구원을 그만큼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의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창세 6,5) 세상을 정화하실 뜻을 노아에게 밝히시면서, 준비하라 하셨습니다. 노아가 배를 만드는 동안 동네사람들은 얼마나 노아를 비아냥거렸겠습니까? 하지만 노아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신약에서 배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구원의 현존의 상징입니다. 동네사람들은 죄악을 범하고, 노아는 구원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도 동네사람처럼 차일피일 죄악 편에 설 수도 있고, 노아처럼 주님을 대면하며 구원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죄악의 한 가운데서 구원을 준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주위의 사람들과 세속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정신적으로 박해하고 유혹합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우린 배를 만드는 노아처럼 주님의 구원을 죽는 날까지 준비하여야 합니다. 잠시의 쾌락과 이익을 위해서, 또 잠시의 손해 때문에 영원한 구원을 내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법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삶의 길잡이라면, “주일을 지켜라”라부터 “교무금을 내라”는 법은 신앙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신앙생활의 도리입니다. 사랑의 법을 실천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세속의 잣대가 아니라 신앙의 잣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을 바라면서 하느님의 법에 순명하지 않는다면 우린 구원 편에 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죄의 편에 서서 살 수도 있고, 노아처럼 끊임없이 구원의 배를 만들며 살 수도 있습니다. |
연중 제6주간 화요일 2007. 2. 13. /세속의 잣대가 아니라 신앙의 잣대로 깨달아야 - 하성호 신부님
2007. 2. 14. 오전 9: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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