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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
-박상대신부- 오늘 복음에서도 부정(不淨)함과 정(淨)함에 대한 논쟁이 계속된다. 어제 복음에서 보았듯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잣대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제자들의 부정함을 트집잡았다. 이에 예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29,13)를 인용하여 그들이 율법만큼 중요시하는 조상의 전통을 ’사람의 계명’(7절), ’사람의 전통’(8절)이라고 단언하셨다. 즉 사람들이 만들어낸 관습에 불과한 것을 율사들은 하느님의 계명인 양 내세운 것을 질타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만든 조상의 전통은 하느님을 섬기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은 행동이 율법상 정결을 깨뜨린 부정함의 행동이 아닌 셈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바리사이와 율사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가까이 불러 모아놓고 정결에 관한 율법을 다시 세워 주시는 대목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고 진정 하느님 앞에 부정(不淨)함이 되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15절) 이 말씀으로 신약의 새로운 "정함"과 "부정함"의 율법이 세워졌다.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느 것도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 이것으로 구약에 불결하다 하여 금기한 음식들은 (레위 11장; 신명 14,3-21) 모두 폐기된 셈이다. 사실 유다인들에게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들, 정(淨)한 새들과 곤충들, 그리고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들 외에 다른 동물은 거의 부정한 것이어서 식용(食用)이 금지되었다. 그나마 그것도 주검에 닿으면 다 부정한 것이 되어 먹을 수 없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주식으로 삼았던 메뚜기(마태 3,4; 마르 1,6)는 식용으로 허용된 곤충(레위 11,22)이었다. 아무튼 예수께서는 모든 금기식품을 단 한마디 말씀으로 폐기해 버리셨다. 자연 그대로의 모든 음식물이 명예를 회복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사람을 더럽히고 하느님 앞에 부정함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15절)이다. 여기까지가 바리사이들, 율사들, 그리고 군중이 들은 말씀이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물러갔을까? 대변(大便)을 생각했을까? 진정으로 더럽히는 것에 대한 설명은 제자들에게만 허용되었다. 어떤 음식이든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음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대변이 되어 배설되고 만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파고들어 사람을 더럽히는 부정(不淨)한 것은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22절) 이는 곧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죄악의 목록이다. 온갖 정결규정을 동원하여 ’껍데기’만 가지고 백성들의 정함과 부정함을 판단하던 율사들은 자신들이 내뱉은 말 때문에 도리어 부정하게 되고 말았다. "정함"과 "부정함"에 대하여 예수께서 새롭게 세우신 규정은 남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이 볼 수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지 않겠는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서 나오는 가장 먼저의 것은 말이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니 한마디의 말이라도 사랑과 깨끗함이 담긴 말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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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히는것 [박상대신부님] 2007.02.07
2007. 2. 8. 오전 8: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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