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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5 주일. 2007. 2. 4. 토평동. 이사 6, 1-2ㄴ.3-8. 1코린 15, 1-11. 루카 5, 1-11. 배에 앉으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예수. 여러분은 이 모습을 보며 무엇이 묵상되십니까?(보통 묵상하는 테두리를 넘어보자) 배란 고기를 낚는 이가 서 있는 장소 아닙니까? 후에 예수께서 어부인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죠. 그 모습을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감지해야 합니다. 즉 예수께서는 지금 배에 올라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것은 당신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낚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낚고 계시는 예수, 당신처럼 베드로도(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낚고 계신 예수께서는 자신과 동행한 베드로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를 관심을 두고 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베드로를 초대할 때 그 배에 있던 다른 인물들입니다. 보통 한 배에서 어부들은 짝을 이루어 고기잡이를 하는데(6절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 베드로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수확을 거두는데, 거기에 “그들”이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보통 서너 명이 함께 일했다.), 그것에 비추어 지금 예수께서 배에 오르신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의 직업 안에서 베드로에게는 짝이 있지만, 이제 당신 구원 사업 안에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은 베드로를 당신의 사람 낚는 짝이 되도록 초대하시는 것이죠.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것을 모릅니다. 단지 이름난 선생을 자기 배에 모신 정도입니다. 그것만으로 영광이죠. 말씀을 마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명령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 4)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루카 5, 5) 고기는 보통 깊은 데로 가서 잡습니다. 그걸 어부인 베드로가 몰랐을 리 없고, 베드로가 밤새도록 애썼다고 할 때, 그 말은 사실입니다. 갈릴래아 어부들은 밤에만 고기를 잡았고, 낮엔 잤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져도 허탕을 칠 때도 있었기에, 별 걱정 없이 그물을 손질했습니다.(못 잡아도 어부들은 서로 가진 것을 나누었다)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헛탕쳤어도 다시 나갈 이유도 없고, 더더군다나 밤새도록 애쓴 자신이 어부도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엔 귀찮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스승의 말씀에 따릅니다. 자신도 모르는 스승의 기운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기운은 어쩌면 특정한 이에게만 오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누가 응답하느냐는 것이죠. 그렇게 응답하는 자가 기적을 체험하고 엄청난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그가 예수님의 짝임을 아직 감지하지 못하는 베드로는 단지 그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어부인 그가 고기잡이를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낚아 올렸던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느낌으로 그물을 끌어올렸다 해도, 사실 그만한 무게일 때 그물 속에는 죽은 낙타나 뱀, 바윗돌, 항아리 등이 함께 올라왔습니다. 즉 물고기인 것처럼 속임을 당하는 가짜들이 많았다는 것이죠.(이것에 어부들은 자주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마도 베드로는 그물을 끌어올리며 그 느낌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그물을 올렸을 때 올라온 것은 이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물을 꽉 채운 모두 온전한 물고기들, 맛깔진 물고기들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기적을 감지했습니다. 예수에게서 나오는 엄청난 권능을 느낀 것입니다. 허튼 것이 하나도 없는 수확. 예수님의 권능은 그런 것이란 걸 베드로는 깨달은 것이죠.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루카 5, 9) 다르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는 것도 어부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격이 다르다. 이런 수확이 어디 있는가? 이렇듯이 그물을 끌어올려봐야 압니다. 손맛만 보고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그물을 던지고, 그 손맛을 보고서 대단하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끝까지 그물을 들어 올려 주님의 권능을 보지 않고 마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배에 끌어올려 보았을 때 드러납니다. 끌어올리기 전에 분명 ‘이것저것 섞여 있을 거야’ 자신들의 경험으로 지레짐작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봤는데 그건 이렇고 저건 저래’ 하면서 자신들의 경험에 의존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우리는 끝까지 주님의 권능에 의지하며 모든 것을 끝까지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과 행함이 나를 엄청난 기적에로 초대할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 8)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은 죄인이니 떠나달라고 청합니다. 이건 베드로의 올바른 고백입니다. 주님의 엄청난 권능 앞에 누가 감히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 죄 없는 척 뻣뻣하게 서 있는 이들이 아니라 이렇게 주님 앞에 겸손되이 자신을 드러내는 이가 구원을 받습니다. 나는 의로운 이라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기도하는 바리사이보다 고개를 숙이며 감히 주님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세리를 구원에로 이끄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 10) 인생역전입니다.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갈릴래아 어부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보지 않고 자신을 초대하신 주님의 초대에 감사하며 기꺼이 주님을 따랐기에 천국의 열쇠를 받은 것입니다. 살면서 얼마나 두려운 일이 많습니까? 세상의 가치 속에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게 다가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의 배에 올라 그의 파트너가 되어 주시는 주님께서 나의 파트너가 되어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당신을 기꺼이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제가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당신께 영광을 돌리리이다. 아멘. |
다해 연중 제 5 주일. 사람들을 낚고 계시는 예수 - 조성호 신부님
2007. 2. 4. 오후 4: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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