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길잡이 :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허탕을 친 제자들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신다. 일생을 바쳐 일구고 가꾸었지만, 자녀들은 한 둘 품을 떠나자, 집이 갑자기 빈 둥지 같기만 하다. 우리 인생에 '거물이 찢어질 만큼 큰 수확을 얻을 '깊은데'는 어디인가?
1. 빈 둥지 인생
산 중턱을 내려오다 말고 좀 쉴 겸 앉았다. 일행들은 어디쯤 오는지 보이질 않는다. 유난히 열심히 따라온 한 신자가 다가와 갑자기 눈빛이 진지해지며 말문을 연다. "큰놈은 군에 갔고, 둘째는 대학 3학년이고, 막내 딸애는 대학 1학년 이예요. 요즘 둘째에게서 전화가 뜸하다 싶어서 핸드폰으로 연락했더니, 어떤 여학생이 전화를 받기에 아들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여자친구라고 하잖아요. 어제 그 여자 친구를 소개받았어요. '이 놈이 벌써 이렇게 컸구나' 싶어 대견스럽기도 하면서 어쩐지 마음이 허전하데요. 요즘은 애들이 다 떠나고 남편과 둘만 있으니 집이 꼭 빈 둥지 같아요. (말을 하는데 부끄러워 할 겨를도 없이 연방 눈물이 흐른다.) 주름살이 늘어가는 나 자신도 싫고, 머리가 반백이 되면서 신문이 잘 안 보인다고 돋보기를 자주 찾는 남편도 불쌍해 보이고요.(눈물은 또 줄줄 흐른다.) 신부님 요즘은 제가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는지, 주책이 되었나 봐요. 창피해 죽겠어요."(억지로 웃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뒤쳐져 있던 일행이 왔다. "무슨 데이트를 그렇게 재미있게 ... "하며 농담을 하려다가 울어서 부은 눈을 보고는 흠칫하며 말끝을 흐린다.
2.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대입, 취직시험을 거치면서 시험노이로제를 겪는다. 군에 입대해서 고된 훈련을 할 땐 남자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사랑에 눈뜨면서 열병을 앓아야 되었고, 결혼을 하면서 평생동지인 동업자를 얻었다. 의기투합하여 사글세 쪽배도 마련했다. 첫 아이를 얻었을 땐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계모임' '적금' '부금' '융자', 아파트 사고 파는 '아파트 굴리기'를 얼마나 열심히 했던가? 직장 따라, 집 값 따라, 학군 따라 이삿짐 싸고 풀기를 거듭하였다. 내 집 마련, 과외 비, 등록금 메꾸기에 얼마나 숨가쁜 나날이었던가?
참으로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열심히 '거물 질' 해온 나날이었다. 이제 한숨 돌릴 여유를 갖게되었다고 막-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신문이 잘 보이질 않고 눈이 침침해진다. 억새꽃처럼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 가는 흰 머리카락은 또 뭔가? "이게 내 얼굴인가?"싶게 낯설어 보이는 푸석푸석한 거울 속의 모습, 내 자신보다 더 애지중지 했던 자녀들이 이제 돈이 필요할 때가 아니고는 통 연락이 없다. 가속이 붙은 인생의 수레바퀴는 왜 이렇게도 빠른가? 갑자기 가슴이 시리고 만사가 서글프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그 인생이란 말인가? 내 집이 왜 이렇게 빈 둥지 같을까? 염치없이 눈물은 왜 이렇게 흐르는가? 지금까지 내가 그물질 한 것들은 다 뭐란 말인가?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3. 깊은 데로 저어 나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애써 마련한 소중한 집이 왜 갑자기 빈 둥지처럼 느껴지고, 나의 분신인 자녀들마저 왜 멀리만 느껴질까? 값나가는 패물들이 왜 이렇게 빛 바랜 깃발처럼 초라해 보일까?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가진 것이 많은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虛)한가? 아마도 배는 부른데 가슴이 고프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 그물을 내리라."
어떻게 하란 말씀인가? 인생의 '깊은 데'란 어디인가?
그것은 많이 갖기보다는 베풀고,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기보다는 주변의 이웃을 돌보고, 이익을 찾기보다는 보람과 의미를 찾는데 힘쓰고, 큰 소리 치며 나서기보다는 침묵 중에 귀를 기울이고, 활동한다고 설치기보다는 하느님 앞에 자신을 비춰보는 기도에 더욱 힘쓰라는 말씀이 아닐까? 그것은 "사람이 음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삶에서 이타적인 삶에로,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에로 삶의 자세를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가 아닐까 ! 그러다 보면 모든 공허함을 채우고, 한숨을 잠재우고도 남을 보람과 기쁨과 희망이라는 큰 고기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힐 것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이 하루하루 늙어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늙어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세상이 집이 아니고 주막임을 인정해야 한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는 것은, 시간 속에 빛 바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죽음 너머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을 잡아 올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쪽배를 주시고, 밤새도록 그물질 할 젊음을 주시고, 일생 동안 동고동락할 동지를 주시고, 분신(分身) 같은 자녀들을 주셨던 그분께서는 언젠가는 당신을 따라 나서도록 우리를 부르실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 나서는 결정적인 순명을 해야 한다.
주님, 세상 것을 버리는 연습을 매일 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비울수록 충만해지는 신비를 깨닫게 하소서. "죽음은 인간이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최대의 순명이다."
[묵상] 인생의 그 물질 깊은데는 어디인가? /2007.02.04
2007. 2. 4. 오후 4:05:32
글자
인생의 그물질, 깊은 데는 어디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