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 독서(이사 6,1-2ㄴ.3-8)는
기원전 739년에 이사야 예언자가 성전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되는 소명체험의 시작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의 초월적인 소명체험을 아무런 꾸밈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임금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목격한 현시 가운데 하느님이 임금의 모습으로 서술되는 것입니다.
세라핌 천사들의 이야기와 여섯 날개들 역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현들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이해한 하느님께서는
모든 우주만물을 주재하시는 만군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최고의 초월성을 부여하는 의미에서 “거룩하시다”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에서
성체를 축성하기에 앞서 “거룩하시다”를 노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을 불살라버리고도 남을 만큼 대단한 강렬함으로
하느님의 초월적인 거룩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느님의 나타나심은
종종 지진과 같은 흔들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구약성경의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하느님의 엄청난 거룩하심 앞에
한없이 초라하고 무능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는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당신의 말씀을 넣어주시는 모습을
마치 천사가
제단위에서 뻘겋게 타오르는 숯 덩어리를 입에 넣어주신 것처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이사야는 이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못한 채
하느님께 자신을 예언자로 보내달라고 자원합니다.
오늘 제2 독서(1코린 15,1-11)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탁월한 증거를 제시하기에 앞서
자신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기에
틀림없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특별히
복음에 나타나지 않는 갈릴래아에 있던
오백 명의 부활의 증인들에 대한 증언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박해했다는 이유로
유다인들인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의 공동체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던
바오로 사도는 자신도 역시 예수님의 부활의 충실한 증인임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에서
이사야 예언자 못지않은 겸손함과
하느님을 체험한 뒤에 솟아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한 일은 모두 자기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5,1-11)에서 루카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두 번에 걸친 메시아로서의 자기 드러내심(4,14-30; 4,31-44) 뒤에
즉시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을 말해줍니다.
마르코나 마태오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부르신 다음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을 하셨다고 하지만
루카복음은 그 반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활동 초기부터 제자들이 줄곧 예수님과 함께 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은
군중을 가르치신 뒤에 제자들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데
고기를 많이 잡은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람을 모아들일 사명을 수여하시는 내용입니다.
루카복음사가는 군중이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호숫가에 있던
두 척(유다인-그리스도인, 이방인-그리스도인)의 배들 가운데(마르 1,16.19 참조)
시몬의 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심으로써 당신 스스로 사람을 낚으러 오신 분이심을 드러내시고(5,3-4)
다음으로 시몬(베드로)에게도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건져내면 죽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물에서 빨리 건져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의미는 바로 이렇게 생명의 길로 이끌어주라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시몬은 조금은 세속적인 의미로 예수님을 두목님(스승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르는 가운데 시몬은 이미 예수님께 대한 깊은 믿음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교회를 암시하고,
밤새도록 자기들끼리 잡았던 것은 예수님이 없는 공동체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없이 밤새도록 애를 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이들이 예
수님의 지시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기 때문에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혔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기들끼리 고기를 잡을 때에는 밤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서서 낮은 곳에서만 그물질을 했던 것 같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것은 교회가 날로 확산됨을 뜻합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혼자 그물을 건지지 않고 다른 동료들을 불러 함께 일을 합니다.
군중들에게 주신 가르침을 들은 뒤에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신 두목을 바라본 시몬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배 위에서 그랬는지 땅에 내려서 그랬는지
복음사가는 관심이 없고 단지 시몬 베드로의 태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죄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초라함과 무능함 때문에 자신을 떠나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두목이었다가 기적을 본 이후에는 주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요한복음(4,1-42)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알아보면서
마지막에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하느님의 나타나심 앞에 취하는 두려움의 자세는
곧 성실한 신앙인의 태도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고 다독거리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신앙을 고백하는 시몬에게 즉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또한
시몬에서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초기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갈 사명도 함께 수여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뻘겋게 달아오른 숯 덩어리 같이
이사야 예언자의 입에 닿았기 때문에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던 것처럼
시몬 베드로
역시 물고기를 많이 잡은 뒤에 꼼짝도 못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에게도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뵙고
박해자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바뀌었음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이사야 예언자,
바오로 사도,
시몬 베드로,
이들 모두 부족한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음에
열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의 다짐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과 함께 한 이사야 예언자,
다른 이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바오로 사도,
다른 이들을 불러서 함께 그물을 건진 시몬 베드로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일을 이웃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은
시몬 베드로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서 열정적으로 봉사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마음에도 뻘겋게 타오르는 숯 덩어리 같은
하느님의 말씀이 와 닿아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젖어들을 수 있을 때
우리 역시 열정적으로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원전 739년에 이사야 예언자가 성전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되는 소명체험의 시작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의 초월적인 소명체험을 아무런 꾸밈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임금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목격한 현시 가운데 하느님이 임금의 모습으로 서술되는 것입니다.
세라핌 천사들의 이야기와 여섯 날개들 역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현들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이해한 하느님께서는
모든 우주만물을 주재하시는 만군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최고의 초월성을 부여하는 의미에서 “거룩하시다”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에서
성체를 축성하기에 앞서 “거룩하시다”를 노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을 불살라버리고도 남을 만큼 대단한 강렬함으로
하느님의 초월적인 거룩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느님의 나타나심은
종종 지진과 같은 흔들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구약성경의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하느님의 엄청난 거룩하심 앞에
한없이 초라하고 무능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는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당신의 말씀을 넣어주시는 모습을
마치 천사가
제단위에서 뻘겋게 타오르는 숯 덩어리를 입에 넣어주신 것처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이사야는 이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못한 채
하느님께 자신을 예언자로 보내달라고 자원합니다.
오늘 제2 독서(1코린 15,1-11)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탁월한 증거를 제시하기에 앞서
자신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기에
틀림없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특별히
복음에 나타나지 않는 갈릴래아에 있던
오백 명의 부활의 증인들에 대한 증언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박해했다는 이유로
유다인들인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의 공동체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던
바오로 사도는 자신도 역시 예수님의 부활의 충실한 증인임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에서
이사야 예언자 못지않은 겸손함과
하느님을 체험한 뒤에 솟아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한 일은 모두 자기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5,1-11)에서 루카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두 번에 걸친 메시아로서의 자기 드러내심(4,14-30; 4,31-44) 뒤에
즉시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을 말해줍니다.
마르코나 마태오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부르신 다음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을 하셨다고 하지만
루카복음은 그 반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활동 초기부터 제자들이 줄곧 예수님과 함께 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은
군중을 가르치신 뒤에 제자들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데
고기를 많이 잡은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람을 모아들일 사명을 수여하시는 내용입니다.
루카복음사가는 군중이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호숫가에 있던
두 척(유다인-그리스도인, 이방인-그리스도인)의 배들 가운데(마르 1,16.19 참조)
시몬의 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심으로써 당신 스스로 사람을 낚으러 오신 분이심을 드러내시고(5,3-4)
다음으로 시몬(베드로)에게도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건져내면 죽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물에서 빨리 건져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의미는 바로 이렇게 생명의 길로 이끌어주라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시몬은 조금은 세속적인 의미로 예수님을 두목님(스승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르는 가운데 시몬은 이미 예수님께 대한 깊은 믿음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교회를 암시하고,
밤새도록 자기들끼리 잡았던 것은 예수님이 없는 공동체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없이 밤새도록 애를 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이들이 예
수님의 지시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기 때문에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혔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기들끼리 고기를 잡을 때에는 밤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서서 낮은 곳에서만 그물질을 했던 것 같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것은 교회가 날로 확산됨을 뜻합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혼자 그물을 건지지 않고 다른 동료들을 불러 함께 일을 합니다.
군중들에게 주신 가르침을 들은 뒤에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신 두목을 바라본 시몬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배 위에서 그랬는지 땅에 내려서 그랬는지
복음사가는 관심이 없고 단지 시몬 베드로의 태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죄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초라함과 무능함 때문에 자신을 떠나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두목이었다가 기적을 본 이후에는 주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요한복음(4,1-42)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알아보면서
마지막에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하느님의 나타나심 앞에 취하는 두려움의 자세는
곧 성실한 신앙인의 태도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고 다독거리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신앙을 고백하는 시몬에게 즉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또한
시몬에서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초기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갈 사명도 함께 수여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뻘겋게 달아오른 숯 덩어리 같이
이사야 예언자의 입에 닿았기 때문에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던 것처럼
시몬 베드로
역시 물고기를 많이 잡은 뒤에 꼼짝도 못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에게도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뵙고
박해자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바뀌었음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이사야 예언자,
바오로 사도,
시몬 베드로,
이들 모두 부족한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음에
열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의 다짐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과 함께 한 이사야 예언자,
다른 이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바오로 사도,
다른 이들을 불러서 함께 그물을 건진 시몬 베드로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일을 이웃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은
시몬 베드로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서 열정적으로 봉사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마음에도 뻘겋게 타오르는 숯 덩어리 같은
하느님의 말씀이 와 닿아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젖어들을 수 있을 때
우리 역시 열정적으로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