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의식
세상을 살다 보면 지나치게 완고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은 좋은데 어딘가 모르게 꽉 막힌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보수적인 반공사상에 투철하여 더 이상의 논리란 있을 수 없다는 분들이나 가부장적인 신념을 가지고 여성문제에 관해서 부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며 열변을 토하시는 분들 그리고 자신이 믿는 종교 외에는 모두 다 미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표적인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반대의 신념을 가지고 자기주장만 펴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신념이 건전한 사고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올바른 주장이라면 이 사회를 위한 예언자적인 소명을 수행하시는 분들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본인은 진심으로 올바른 신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만큼 위험하고 이 사회와 인간관계에 해를 끼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종교인들에게는 이런 완고한 정신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데다가 실제로 비종교인들이 판단하기에 종교인들의 문제점으로 이러한 점을 많이 지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고삼아 인터넷의 뉴스기사들을 들여다보면 특히 의견참여가 많은 부분이 종교에 관한 기사들이고 그 의견들을 보면 이런 식의 신앙이 과연 건전한 것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낯뜨겁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다종교사회에 대한 묵상으로 존경하는 이현주 목사님의 글을 잠시 인용할까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부수어야 할 우상은 절간의 불상이나 장승 따위가 아니라 어느새 ‘하느님’보다 커지고 그래서 막강한 세력을 부리는 ‘기독교’라는 우상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짓밟고 능멸하면서도 그것이 하느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하는 ‘교회’라는 이름의 우상이다”
오늘의 복음말씀도 사실 이러한 잘못된 편견과 예수님과의 대립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독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고향 사람들이 판단하는 번듯하고 존경할만한 어떤 그들만의 편견적인 자격을 예수님이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이런 모든 오만을 벗어버릴 때 가능한데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히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주님은 이런 오만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희생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진실히 티없이 맑고 올바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시다.
차공명 프란치스코 신부 ( 천주교 부산교구 삼랑진성당 주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