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연중 4주일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2007.01.27

2007. 1. 28. 오전 9:14:37

글자
오늘 제1 독서(예레 1,4-5.17-19)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신의 체험을 두 부분으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첫째,
모세를 포함하여 모든 예언자 그렇듯이
하느님께서는 힐키야의 아들 예레미야를 태중에서부터 부르셨고,
축성을 하셨으며,
민족들의 예언자로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로마 4,17)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탄생에서부터 특별한 목적을 두고 계셨다고 예언자는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축성하신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목적,
혹은 사명을 위하여 골라낸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사명을 수여함을 뜻합니다.

둘째,
예언자로서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하는
이의제기나 징표에 관한 부분(1,7-16)이 생략된 채로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떠나야 함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떠돌이가 되어야 하고,
투쟁을 해야 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긴 옷을 여밀 수 있도록 허리에 띠를 두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난공불락의 성읍으로,
청동 벽으로,
그리고 쇠기둥으로 만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이제 예레미야 예언자는 당신께서 함께 해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정복할 수 없는 요새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고,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과 같은 존재이며,
절대도 쓰러지지 않는 쇠기둥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있어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오늘 제2 독서(1코린 12,31-13,13)는
교회는 물론이요 가정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규범인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가르침입니다.
우선 사랑의 열다섯 가지 특징을 말해주고(13,4-7),
사랑의 특성을 완덕과 충만함에 비교하고 있습니다(13,7-12).
완덕에 이르고 충만함을 얻게 될 때에는
하느님의 얼굴과 사람의 얼굴이 마주 보게 될 것이라는 표현은
모세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민수 12,6-8)과
하느님과 씨름을 한 야곱의 고백(창세 32,31)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사랑으로 의롭게 된다면 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흡족할 것이라고 한
시편 저자의 희망을 말해줍니다(시편 17,15).

오늘 복음(루카 4,21-30)은
지난주에 들었던 마지막 말씀부터 시작되면서
고향사람들에게 배척당하신 예수님과
하느님의 말씀이 유다인들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선포됨을 말해줍니다.

청중의 반응(22),
예수님의 응답(23-27)
나자렛 사람들의 분노와 공격(28-29),
예수님의 떠나심(30)으로 나뉘는 오늘 복음에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참조 2,40.52)을 들고
모두들 기분 좋게 말했고 놀라워하였다(사도 2,7 참조)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들의 말을 통하여 전해지는 것이며,
그 말씀을 듣는 인간들에게는
단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동의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따르는 하느님과의 약속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갑자기 반전됩니다.

기분이 좋았다는 긍정적인 반응과는 달리
예수님의 인간적 출신을 따지면서 예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배척하기 시작합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을 주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자기들이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요셉의 아들이기 때문에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판단하는 고향 사람들이(5,31 참조) 답답한 나머지
예수님의 응답은 조금은 빈정대는 투로 시작됩니다.
고향 사람들은 희년을 선포하는 은총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기분이 좋았음에도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즉시 잊어버리고
기적과 같은 징표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심스러워서 그랬을 것입니다.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며,
이제부터 하느님의 계획과 인간의 의지가 충돌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이었던 사렙타 마을의 과부에게
예언자 엘리야가 파견되었던 이야기(1열왕 17,9-24)와
엘리사 예언자에 의해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나병이 나았다는 말씀(2열왕 5,1-27)을 끌어들이면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인들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단절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상황은 또 다시 반전됩니다.
성령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4,14)으로부터
기적을 바라면서 회당에 있던 유다인들은
자기들을 무시하는 말로 알아들었기 때문에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카복음사가는 사도행전이 끝날 때까지(사도 28,28-31)
이들이 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거부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서 떨어뜨리려 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죽이는 연습을 미리 나자렛에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도 그러실 것(부활)이듯이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고 합니다.

아직 당신께서 죽으셔야 할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군중들의 생각과 행동을 갈라놓으면서 떠나가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에서 볼 것이듯이
죽음이 성령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권능을 이겨내지 못할 것임을 말해줍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이 드러나게 하시기 때문에(히브 4,12)
유다인들의 속셈이 드러났음을 말해줍니다.

우리와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이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기분 좋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역시 같은 것은 아닐까요?
물론 예수님을 벼랑 끝까지 끌고 갈 수는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게
장벽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군중들의 분노와 격렬한 행동을 뚫고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길은 바로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우리가 걸어가는 길입니다.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걸어가면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도 역시 예레미야처럼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체험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절대로 사명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오늘 새롭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의 열다섯 가지 특성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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