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묵상길잡이 : 인간은 누구나 '내 것'을 갖기를 고집한다. 이것은 가끔 배타주의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야훼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하느님임을 말씀하신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곤경에 처한다. 나의 신앙자세는 어떤가?
1. 우리 신부님은 바람둥이야.
여자 신자들이 모여 앉아 부임해 온 지 1년도 안 되는 본당 신부님의 품평회를 한다. 제 나름대로 신부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쏟아 놓는다. 그런데 어떤 신자가 "우리 신부님은 아무래도 바람둥이 같아!"라고 했다. 신자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는 신부에게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는 말이었다. 거기엔 신학생 어머니도 함께 있었다. "이거 큰일이다." 槁底?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다그쳤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우리 신부님은 이 여자도 좋다, 저 여자도 좋다고 하시니 그렇지요."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신학생 모친은 "그야 본당신부님은 모든 본당신자들의 신부님이 신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시고 다 잘해 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어떤 사람에게만 특별히 잘해주는 것이 문제지! 안 그런가?"하였다. 그랬더니 본당신부를 바람둥이라고 한 그 신자는 "그래도 그러니까 나는 싫던데요!" 하며 시무룩해졌다. 신학생 모친은 가만 있지 않았다. " '태양은 어느 집 앞마당만 비추지는 않는다'는 말도 몰라?" 그러자 모두 의논이라도 한 듯이 "맞아, 맞아, 그 말이 맞아!"하며 입을 모았다.
2. 예수님의 고향에서의 봉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에서 봉변을 당하신다. '목수 요셉의 아들인 예수'의 밑천을 훤히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파르나움에서 하셨다는 기적의 소문을 들었지만 긴가 민가 하였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어디 한 번 기적을 해보라고 요구하였다. 믿음은 없으면서 눈요기를 하겠다는 호기심의 발동이다. 예수님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신다.
예수님은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적을 말하시면서,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이방인 과부댁 뒤주의 밀가루를 많게 하고, 수많은 나병환자 중에 이방인 장군 나아만 만을 치유하신 기적들을 상기시키신다. 이 기적들은 불충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행한 것들이다. 이것은,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면 신분과 언어와 피부색을 뛰어넘어 누구나 거두어들이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의 이 말씀은 고향 나자렛 사람들을 크게 자극하였다. 그들은 모두 들고일어났고,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루가4,29)
3. 구원의 보편성(모든 사람들을 구원에로 부르신다)
구원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엔 야훼 하느님이 자기들만의 하느님인줄로 알았다. 그러나 나중엔 이스라엘이 잘못을 저지르면 이방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배를 경험하면서 이러한 깨달음은 더욱 깊어졌다. 후기 예언자 시대로 내려오면서 하느님이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라는 '보편주의'가 강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선포되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에도 "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예레 1,5)고 말씀하신다.
군에 있을 때, 대위 4명이 항상 함께 다녔다. 나는 하도 이상해서 "저 사람들은 왜 항상 함께 다니는데요?"하고 모시고 있던 신부님께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신부님은 "저 사람들은 사관학교 출신이라고 다른 사람들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고 저희들끼리만 다닌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부터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를 강조하며 못난 자존심을 내 세우는 그들에 대해 '삼가 조의(弔意)를' 표하고 싶었다.
같은 성(姓)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集姓村)은 다른 동네보다는 항상 더 배타적이기 쉽다. 그리고 그런 곳은 늘 발전의 대열에서 밀려나고 후진 곳으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네 본당 내 본당을 살벌할 정도로 따지는 것이나, 교파간의 장벽, 지방색, 지역 감정 등 이 모든 것은 비뚤어진 특권의식이나 선민의식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옹졸하고 미성숙한 못난 짓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교회는 이미 제 2차 바디칸 공의회를 통해서 타 교파는 물론, "자기 탓이 없이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은 우리들만의 하느님인양 착각하는 때가 많다. 2차 대전 때에 독일과 프랑스 교회는 모두 자기들이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함으로 하느님을 난처하게 했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가톨릭 신자라면 참으로 가톨릭(catholic)적인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확 트인 시야와 사고를 지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옹졸한 편가르기로 하느님을 욕되게 한 적은 없는가?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을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