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예수님은 약자로 ,또 실패자로 죽어 가셨다[서공석신부님]-4주일

2007. 1. 28. 오전 9:03:17

글자
예수님은 약자로, 또 실패자로 죽어 가셨습니다.
-
부산교구 서공석 신부-

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이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서 몇 구절을 읽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루가복음서는 이사야서의 이 말씀이 예수님이 살아서 행하신 은혜로운 일들을 요약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말씀들에 이어서 나오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탄복하였지만, 그들은 즉시 예수님의 출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율사도 제관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은혜로운 일을 보았지만, 그것을 하느님과 연결하여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출신과 신분만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과 더불어 구약성서 열왕기에 나오는 고사(故事)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를 기근에서 구해준 이야기(1열왕 18,7-16)와, 엘리사 예언자가 시리아 사람 나만의 나병을 고쳐 준 이야기(2열왕 5,1-14)입니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은혜로운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분통을 터뜨리고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는 말로 오늘 복음은 끝났습니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분개한 것은 그가 요셉의 아들인 주제에 예언서를 자유롭게 인용하고, 그들이 존경하는 엘리야와 엘리사 두 예언자를 거명하여 자기 자신과 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말하고, 옛날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가 실천한 그 은혜로우심을 상기시켰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그런 예언자적 역할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분을 미워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분노에 괘념치 않고 당신의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고을의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고을은 산 위에 있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무대는 나자렛이고 그 고을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에 있습니다. 지리적 실제 여건을 무시하면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죽을 위험에 처한 무대를 산 위로 잡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밖의 골고타 산 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자적 말씀과 행위를 처음부터 거부하였고, 그들의 분노와 증오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길을 가셨으며, 그 길은 결국 예루살렘 밖 골고타 산 위의 십자가에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소외되고 차별 받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알리는 데에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율법을 잘 지키면 상주고, 못 지키면 벌을 주는, 의로운 분이라고만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어온 하느님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하느님이 은혜로우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교가 믿어온 하느님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버리고, 힘의 논리를 택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서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냉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보고 믿을 터인데”(마르 15,32)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힘을 한 번 발휘해보라는 것입니다. 인류역사가 의지하여 살아 온 힘의 논리입니다. 하느님은 강한 자와 함께 계신다고 믿어온 인류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약자로, 또 실패자로 죽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발췌하여 나열하신 ‘가난한 이’, ‘잡혀간 이’, ‘눈먼 이’, ‘억압받는 이’는 모두 약자이며 실패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약자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죽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그런 약자들과 함께 계신다고 믿으셨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하실 일, 곧 불쌍히 여기고 살리는 일을 실천하다가 강자인 유대교 기득권자들의 손에 잡혀 생명을 잃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죽어 가셨습니다. 약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을 부르는 일뿐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하느님은 과연 약자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강자와 함께 계시지 않고 약자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느님은 힘으로, 이기고 빼앗고 사로잡고 억압하는 강자 안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가난하고, 사로잡히고, 억압받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며 살리는 일을 하는 우리의 실천 안에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의 뒤를 이어 같은 실천을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과 교섭하여 그분의 도움으로 강한 자가 되어 남을 억압하며 잘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강하고 부요하고 화려한 것은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찾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외면하면서, 더 부요하게, 더 강하게, 더 화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마르 8,33 참조)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약자의 길입니다. 사랑은 강자로 군림하지 않고 약자가 되어 은혜로운 일을 행합니다. 오늘 우리가 제2독서로 들은 고린토서는 사랑은 너그럽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모든 것을 견딘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시는 하느님,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로우심을 실천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혜택 받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작은 노력으로 큰 결실 얻기를 좋아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로우심을 유산으로 받아서 실천하는 자녀로 살겠다는 약속이 담긴 아버지라는 호칭입니다. 신앙인은 세례에서 이 세상의 허례허식을 모두 끊어버리고, 사랑하고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한 생명을 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이 우리의 사랑 안에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으뜸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자랍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자기 주변의 약하고 실패한 이웃들을 사랑하여 그들이 살고 자라게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 숨 쉬시게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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