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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나자렛의 반응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 나자렛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출신부터 그랬고, 가족들도 전혀 눈여겨 볼 게 없었지요. 가난한 어머니 마리아가 있고, 형제자매들이 있을 뿐이지요.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고향 주민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빈정댑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아나? 목수 요셉의 아들 아닌가? 뭐 볼게 있겠나? 저 사람, 기적을 행하는 자라고? 그럼 어디 한 번 여기서도 해 보게나. 그들은 실실 비아냥거리고, 야유를 보내고, 이죽거립니다. 이렇게 시비 걸고 비판적인 고향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도전하십니다. 여보시오. 내 말을 들어보시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절대로 환영받지 못하지요. 나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내가 고향에 왔지만, 여러분은 나의 진면목은 보지 않고, 나의 주변사항만 가지고 나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의 말을 듣지도 않습니다. 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나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를 비아냥대고 있습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예언자 엘리야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들 있겠지요? 그 곤궁한 때에 엘리야는 이스라엘 과부들을 도와주지 않고, 이방인 과부, 즉 시돈 지방 사렙다 과부만 도와준 거 알고들 있겠지요? 또 하나 예를 들지요. 예언자 엘리사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들 있겠지요? 그 곤궁한 때에 엘리사는 이스라엘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지 않고, 이방인 환자, 즉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을 고쳐준 거 알고들 있겠지요? 여러분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모든 예언자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도 여러분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죽인 후에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 죽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사명이 있으니 그걸 얼른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죽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아두시오.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고 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이방인들이 하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귀담아 듣는 대신, 그 인물의 평범함을 내세워 그를 판단하고 얕잡아봅니다. 게가 무얼 하겠나? 썩 꺼지라고 해. 듣기도 싫어. 뭐 병을 고치는 기적을 한다고? 그럼 병이나 고치고 기적이나 해보라구. 다른 건 일체 하지 말게. 듣기도 싫으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한편으론 복음이었지만, 다른 한편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역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었지만, 그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찮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누구에게나 들려주었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한테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을 거부하는 자들은 권력을 가지고 그분을 제거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결국엔 그분을 제거합니다. 나무에 높이 매달았습니다. 그런데 진가는 그때부터 나타났습니다. 무력하기만 했던 그분이 나무에서 죽자마자 새로운 힘,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로운 그분을 인정해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일을 막강하게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일을 계속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 사람을 구원하는 일,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계속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아멘. |
[강론] 고향 나자렛의 반응[박장원신부님]-4주일
2007. 1. 28. 오전 9: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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