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 2007-1-28/편견과 잘못된 선입견 - 한창현 신부님

2007. 1. 28. 오전 9:19:25

글자

연중 제4주일       2007-1-28

 

   루카 4,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 오줌을 싸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반 친구들 모두가 그를 "오줌싸개"라고 놀렸습니다. 30여년이 지난 후 어느 날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았던 열등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건강한 사회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사람의 단편을 보고 전체로 평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등과 같은 속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담이 모든 경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공간 속의 모습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지극한 편견이고 잘못된 선입견적 판단입니다.

이조시대 때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잘못된 판단일 뿐입니다. 군대에서 졸병이었다고 사회에서도 졸병인 것은 아닙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릴 때 열등아로 취급되었으나 천재적인 능력으로 후대 사람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윈스턴 처질은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다고 합니다. 영어에 늘 낙제 점수를 받았고 육군 사관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낙방하였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낙제 점수를 맞았고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의 계기를 마련한 제임스 와트도 얼간이라는 말을 들었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도 낙제 점수를 받았으며 상대성 이론을 말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의 반대로 등교를 거부당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어릴 때 모습으로 그들은 평가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도 보면 모세는 어릴 때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로 버려졌습니다. 장성한 후에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로 40년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도망자나 살인자로만 평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민족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코끼리 다리를 보고 코끼리를 기둥 같다고 말하거나 어머니가 아이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여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린아이로 취급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의 동네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릴 적 보아왔던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그분의 가르침이나 명성을 무시합니다.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좋은 말씀이라 칭찬하면서도 속으로는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칭찬과 탄복을 하면서 뒤에서는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자기들 고향에서 그만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은 큰 자부심과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반면에 ‘나자렛 사람 예수, 목수의 아들 예수’라는 한 인간의 조건을 봤을 땐 별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구약의 두 예언자 이야기를 통해서 동네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합니다.
즉, 열왕기 상권 17장에서 엘리야는 이방인 과부만을 도와주었고, 열왕기 하권 5장에서 엘리사는 이방인 나아만 이라는 나병환자만을 고쳐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욱 큰 신앙을 가진 밖의 사람들을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자기들만의 하느님으로 알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질책이며 모독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벼랑 끝으로 끌고 갔지만, 예수님은 유유히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정관념, 마을 사람들의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인물을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전체의 일부인 부분일 뿐입니다. 전부가 아님을 분명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부족하다면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이 분명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숨겨져 있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동네 사람들에게는 기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아닌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고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과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오늘의 이 시간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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