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시간에 본당 수녀님이 묵상을 하려 성당에 들어갔더니
어둑한 성당 한편에서 자매님 한 분이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슬픈 일이 있는가 보다 하고 수녀님은 따로 앉아 기도를 했는데,
그 자매가 하도 오래 앉아 울며 기도하는 바람에 수녀님의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러나 기도 하는데 중간에 끊을 수가 없어서 참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 자매가 집에 가려 일어섰을 때 수녀님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자매님, 무슨 힘든 일 있어요?”
어둡고 무거운 얼굴을 하고 말없이 서 있는 자매가 안스러워 수녀님은 그 자매를
수녀원에 데리고 가서 차나 한 잔 하자고 초대했습니다.
괜찮다는 자매를 몇 번 권유해서 수녀원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나누다 보니 그 자매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래도 죽을 수밖에 없고, 저래도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어서
죽을 결심을 했는데 집에 남겨 논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렇게 성당에 앉아 울고 있었다고 말을 하더랍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위로하고 격려하였지만 수녀님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자매의 집까지 함께 갔습니다.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수녀원에 있던 과자며 과일을 아름아름 봉지에 담아서 갔죠.
오늘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도둑놈이라고, 날강도 같은 놈이라고 욕을 먹던 세리였습니다.
오늘날 마태오라고 알려지고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는
후에 교회의 복음서라고 하는 마태오 복음서를 쓰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복음서에 “교회 공동체의 사랑”과 “형제애”에 대해 강조하는 등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그가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과 형제애에 대해
마음을 다해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레위였던 그는 누구보다 돈이 많았고,
남들은 손가락질을 하건 어쨌건 그래도 그를 이해해 줄 “죄인”인 동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변화시킨 것은 그가 가진 재산이나 지위나 동료들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그를 부른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예수님이 있었기 때문이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녀님은 그 후로도 가끔 그 자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자매 역시 죽을 결심을 한 것은 잊고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어떤 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듯,
우리 역시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옆에 서 줄 때,
그들은 자신의 삶의 어려움을 털고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체험한 삶의 기쁨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렇게 어려운 이들, (내가) 버려둔 이들의 곁에 서 있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님 오늘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 이회진 신부님 /2007.01.13
2007. 1. 14. 오전 9: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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