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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1 주간 토요일. 2007. 1. 13. 토평동.
히브 4, 12-16. 마르 2, 13-17.
어느 저명한 소아과 전문의는 체중 미달의 연약한 어린이를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회진할 때 아이의 진료기록표에다 다음과 같은 처방을 써놓는다고 합니다. “이 아기는 세 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함.” 사실 사랑이 필요한 것은 갓 태어난 아기뿐만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신체적 질병이 대부분 불안이나 고독, 그리고 버림받는다는 느낌에 기인한다는 데 의견을 일치 시킵니다. (국민일보 참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명약이고, 사랑받지 못하는 이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은 품 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가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었습니다.(루카 15, 3-7) 가지고 있는 은전 아홉 개가 아니라 잃어버린 한 개의 은전이었습니다.(루카 15, 8-10) 함께 있던 큰 아들이 아니라 집 나간 작은 아들이었습니다.(루카 15, 11-32) 이 말씀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나 가지고 있는 것의 불필요성이 아닙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함께 있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더 관심을 두고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의 초점이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관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 17)
예수께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 사랑하기 위해 왔고, 모두가 구원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을 향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들의 이름처럼 구원이란 이렇게 구별하고 저렇게 구별해서 특별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신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는 이러한 구분 속에서 교회 안에 구원받는 이들을 몰아놓고 마치 세뇌를 시키는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밖으로 나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사랑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바리사이, 율법학자 너희들인가? 그렇다면 구원받지 못한 것 같은 이들, 사랑받지 못한 것 같은 이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어라. 그들에게 사랑의 의사가 되어 주라. 이것이 당신의 메시지입니다.
누구라도 세리가 되고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분류되느냐가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따라라”할 때 어떻게 응답하는지가 중요하고, 그분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 연회(여기에서의 식사는 연회를 열듯 큰 잔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레위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랑으로 부르셨다는 것이 너무 뛸듯이 기뻤고, 그렇기 때문에 성대하게 잔치를 베푼 것이다)를 벌일 정도의 내어줌이 있느냐 기쁘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 제가 의인이되 고개를 세우지 않고 당신 앞에 늘 용서받아야 할 죄임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하소서. 저는 늘 당신의 치유가 절실한 병든 자이옵니다. 저를 감싸주시고 치유하소서. 그리고 그 사랑으로 다른 이를 대하게 하소서. 아멘. |
다해 연중 제 1 주간 토요일./“이 아기는 세 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함.” - 조성호 신부님
2007. 1. 13. 오전 11: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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