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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1 주간 금요일 2007. 1. 12. 토평동.
히브 4, 1-5, 11. 마르 2, 1-12.
많은 군중들이 예수 주변에 몰려오고,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들어섭니다. 그 자리에 네 사람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들고 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 중풍병자를 위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풍병이라고 하면, 나병환자처럼 하느님께 벌을 받은 유형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하느님의 벌일지는 몰라도 그들이 사랑해야 한다는 사명은 분명 깨닫고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그를 치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주변에 모여 있는 많은 군중들은 그렇지 않은가봅니다. 그들에게 예수가 어떤 매력을 주고 있었을까요? 분명 예수께서는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며 너희도 사랑하라고 하셨거늘 그들은 무엇을 보려했던 것일까요? 중풍병자가 그들 때문에 예수께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들은 분명 자리를 비켜주었어야 마땅하지 않았겠습니까? 누군가 “교회는 커가나 예수쟁이(크리스챤)는 사라져간다”고 말한 것처럼, 많은 이들이 예수 주변에 몰려있으나 그들은 무엇이 예수님의 뜻인지를 깨닫지 못한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믿음이 없는 자 아시고, 믿음이 있는 자 아시는 분 아니십니까? 중풍병자를 살리려는 이들의 노력을 보시고, 그 안에 담겨진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아시고, 그들의 소원 그리고 중풍병을 앓고 있는 이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오늘 회합이 끝나고 교우들과 신부 수녀들이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은 교우들의 외형적인 것밖에 모르시죠?” 신부님께서 교우들의 속사정을 잘 모르고 얘기하니까 나온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래, 사실 신부들이 뭘 아는 것처럼 얘기해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정이야 모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든 생각은 ‘하찮은 신부는 모르나, 나의 주님은 다 아신다. 그러니 주님만을 믿으며 그분만을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짧은 말을 통해 내 모습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주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돌아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예. 예수께서는 아십니다. 사람들은 모르나 예수께 다가오는 이들, 아니 다가오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다 아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예수께 다가와 치유를 원하는 이들의 바람을 왜 모르겠습니까? 사람들은 막아서고 구름처럼 운집하며 마치 주변에만 있으면 신앙인인 것처럼 보이나 누가 신앙인이고, 누가 허울뿐인 사람들인지 왜 모르시겠습니까? 혹 아무도 내 믿음을 몰라준다 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내 맘을, 나를 아신다는 것을. 겉 조금 알고서 아는 척하는 사제들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죠.(이건 뭇 사제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 사제를 주님에 비길쏜가?)
“얘야!”(마르 2, 5)
저는 이 말이 정겹습니다. 이 말은 ‘아들아’라는 뜻과 상통하는 말이죠. 예수님의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잘 알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적 권능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아버지 하느님이라는 권능을 가지고 아파하는 이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친근함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친구들과 믿음을 가진 너. 이미 그 믿음을 가진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각별한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믿음은 알겠지만, 이 중풍병자의 믿음은 어찌 알 수 있느냐구요? 예수께서 “들것을 들고 돌아가라”(마르 2, 11)고 하실 때, 이 병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걸어갔습니다. 그에겐 이미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자신 앞에 무엇인가 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어도 포기함이 없이 나아가며, 주님의 말씀이라면 즉시 움직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아시며 그가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생각해보라. 낫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왔는데, 육적으로 낫게 해주마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들의 표정을! 그러나 그것이 더 좋은 것임을 믿음의 눈은 알 수 있는 것을. 하지만,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주 예수 앞에 서 있는 나.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나. 그러나 나는 그저 문 앞에 서성이는 사람인가? 다른 이들을 막는 사람인가? 주님께 모든 걸고 있는 믿음의 사람인가? 주님의 말씀에 즉시 움직이는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
다해 연중 제 1 주간 금요일/예수께서는 아십니다. - 조성호 신부님
2007. 1. 13. 오전 11: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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