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월요일부터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활동하시던 때를 묵상하는 연중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제1 독서(이사 62,1-5)는 밤을 지새우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던 이사야 예언자가 새벽이 왔음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을 새색시라고 부르면서 새벽이 왔으니 얼른 일어나서 기쁨의 하루를 준비하라고 사방에 알리는 것입니다. 예언자가 새벽부터 도시를 깨우는 이유는 이제껏 버림받았다고 여겨졌던 예루살렘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이제는 회개를 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도시가 되었으며, 이제껏 소박맞은 여인처럼 여겨지던 예루살렘이 하느님께 성실하게 되었으므로 하느님과 혼인한 여인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아가서의 신랑이 신부를 부르는 소리와 같습니다. 아주 오래된 도시인 예루살렘을 다시 재건해주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과 혼인의 계약을 맺으신다는 축복을 전하고 싶어서 예언자는 기나긴 밤을 지새웠고, 새벽녘이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회개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제 회개하였기 때문에 젊어진 예루살렘은 신랑이신 하느님의 화려한 면류관이 된 것입니다(잠언 12,4). 예루살렘은 더 이상 하느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 역시 더 이상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2 독서(1코린 12,4-11)에서 바오로 사도는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주면서 아직도 교리로 정립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주님(성자), 하느님(성부). 코린토 공동체 신자들의 열심과 성실함 때문에 성령께서 선물로 주신 많은 은사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모든 은사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며, 그 모든 은사를 주시는 분을 우리는 주님으로 부르고, 하느님으로도 부르는 성령이시라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방식대로 적합한 은사를 주시는데 모두 교회 공동체와 하느님을 위해 사용해야 함을 가르쳐주십니다. 특히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에 주어진 직분에 합당한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교회와 하느님을 위해 은사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오늘 복음(요한 2,1-11)은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가나에서의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이루신 표징이기 때문에 더욱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이루는 기적이라는 말보다는 많은 이들이 보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하는 표징, 혹은 일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다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2,11), 그리고 제자들이 당신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드러내기 위해 나타나엘의 고향 카나로(요한 21,2) 직행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아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된 어머니 마리아께서도 계셨습니다. 마르타가 앓고 있던 오빠 라자로에 대해 우정을 빙자로 간접적으로 주님께 말씀드렸던 것과(11,3) 마찬가지로 아직도 아들 예수님이 기적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한 어머니 마리아는 직설적으로 기적을 청한 것이 아니라 잔치 집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하면서 곤란한 상황을 말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모질게 들리는 대답이지만 어머니 마리아(인간)께서 예수님(하느님)의 일에 개입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오르실 때가 되면 그때에는 예수님(하느님)께서 어머니(인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실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깨달으신 어머니 마리아는 일꾼들에게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물독 여섯 개를 가득 채운 물을 어디에서 퍼왔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샘에서 퍼왔겠지요. 왜 하필이면 여섯 동이만 채웠을까요? 물동이가 그것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충만함을 뜻하는 일곱에 아직 이르지 못했음을, 즉 아직 예수님께서 영광을 다 드러내실 때가 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기 때문에 과방장이 예수님께서 물로 빚으신 포도주를 제일 먼저 맛본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단지 과방장만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몰랐고, 물을 퍼간 일꾼들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물이 포도주를 바뀌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과방장이 맛을 보았을 때에는 물이 이미 포도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은 단순하게 잔치 집을 돕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며,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요한 3,29)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서 흘릴 피를 미리 말해주는 것이며, 당신의 힘으로 이루신 기적은 이제 미사 때에 제대 위해서 성령께서 이루실 성체성사 기적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랑이시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은 신부이기 때문에 잔치 상에 기쁨을 표시하는 도구인 포도주가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아셨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께 진지하게 청한 것입니다. 천상의 잔치 상에 쓰이는 포도주이기 때문에 찌꺼기를 짜서 내놓는 포도주가 아니라 지금까지 마셨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잔치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더 좋은 포도주의 독특한 맛을 즐겼었음에도 오늘 복음은 제자들만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고(요한 12,41 참조) 제자들만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과 제1 독서는 온통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말해주는 말씀들입니다. 제1 독서가 신랑을 맞이하라고 신부를 깨우는 소리라면, 오늘 복음은 신랑이 신부들을 위해 잔치에 필요한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2 독서는 신랑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적 혼인에 필요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바로 교회를 뜻하는 것이고,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역시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선다면 하느님께서는 마치 우리를 버림받았던 여인이 아니라 당신 마음에 드는 새색시처럼, 소박맞은 여인이 아니라 당신과 혼인한 여인처럼 받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제2 독서에서처럼 모든 신앙인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시는 성령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리아처럼 천상잔치에 필요한 은총을 청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잔치 집에서 빠뜨릴 수 없는 포도주는 기쁨을 주는 술입니다. 마리아와 일꾼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이었고, 기쁨을 주는 포도주를 퍼다 손님들에게 나눠준 이들은 바로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영광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물을 퍼간 일꾼들처럼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웃에게 전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성경을 읽고 쓰면서 성경에 드러난 예수님의 영광을 확인하고 그분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강론] 연중 2주일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2007.01.13
2007. 1. 14. 오전 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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